성지순례 남양성모성지
오후 5시경 남양성모성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침을 늦게 먹고 점심을 먹지 않고 강행군 하였더니 배가 고팠다. 핸드폰으로 바지락 칼국수 집을 검색하고 찾아갔다. 진입로부터 빨간 철죽 꽃 사이로 예수상이 보인다. 두 팔 벌려 순례 객을 맞는 예수님 얼굴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느껴진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성모 마리아의 옷자락을 붙잡은 아기 예수를 그린 성모자상(聖母子像)도 서 있다. "누구나 힘들 때 엄마를 찾아가 하소연하듯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하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이곳은 올해로 성지선포 28주년을 맞은 경기도 화성 남양성모성지. 27만㎡(약 8만2000평)에 이르는 성지는 매년 2월 복수초를 시작으로 늦가을 구절초까지 앵초, 금낭화, 매발톱, 말발도리, 은방울꽃 등이 릴레이를 벌이는 곳이다. 인근 초·중·고 학생들이 자연학습을 오고, 숲 해설사가 탐방객들에게 나무와 꽃을 설명하는 곳이다. 주말엔 인근 주민들이 찾는 공원이다. 최근엔 성지 주변 마을에 늘어난 외국인 근로자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 이곳 명물 중 하나는 지름 50㎝ 이상 되는 '돌 묵주알'. 천주교 신자들은 산책로를 따라 놓인 200개 넘는 '돌 묵주'를 어루만지거나 껴안으며 묵주기도를 올린다. 오랜 기도와 준비 기간을 거처 모셔진 남양 성모 마리아상은 한국적인 느낌의 아름답고 자비로우신 어머니의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이해 주고 있다.
남양읍 너른 동산에 터한 남양성모성지에도 지금 터 없으신 성모 성심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있는 대성당이 지어지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이후 이 터는 순교자의 피로 축성된 거룩한 땅이 되었다. ‘건넝골’이라 불리던 이곳이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가 됐다. 충청도 내포 사람 김필립보ㆍ박마리아 부부, 용인 덕돌 정필립보, 수원 걸매리 김홍서(토마스)를 비롯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묵주를 손에들고 기도하며 모진 박해를 견디어 낸 순교자들의 성모성심을 이어받은 신자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기도할 수 있도록 특별히 봉헌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