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 약현 성당
검은 수단을 휘날리며 불의를 척결하고 다니는 ‘열혈사제’가 최근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가톨릭교회에 대한 관심도 커진 가운데 배경으로 등장했던 구담성당도 주목을 받았다. 그 구담성당의 실제 장소는 바로 서울 중림동 도심 속 그림 같은 풍경이 약현 성당이다. 나는 용산 성심신학교를 돌아보고 중림동 약현 성당을 찾았다. 서울 도심에 있지만 언덕배기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축물로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과 색유리화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도심 속 정원 같은 곳으로, 아래 도로의 차량 소리가 성당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에 막히면서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 곳이다. 주변 직장인들과 천주교 신자들은 알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은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는 약현 성당이다.
약현 성당은 천주교 신자들이 명동성당을 제치고 결혼하고 싶은 장소 1위로 꼽는 성당이다. 이날도 오후 6시경인데 결혼식이 있어 분주했다. 약현 성당은 한국교회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의 집이 있어 많은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지어졌으며 중구 중림동에 위치하여 중림동성당이라고도 불리며 건축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다. ‘약현(藥峴)’이란 말은 약재가 거래되던 서대문 밖 언덕의 지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약현 성당은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해 1891년 착공하고 2년 뒤인 1893년 완공했다. 1898년 완공된 명동성당보다 5년이나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며, 당시에는 문밖 성당, 성요셉 성당이라고도 불렸다고한다.
천주교 박해 때 가장 많은 순교자를 처형했던 서소문 밖 사형장을 굽어보는 약현 언덕에 세워진 것이 아주 인상적이다. 1886년 한불수교 체결 이후 한국에서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어 천주교인들은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겠다는 취지로 순교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을 매입했다고 한다. 지금은 커다란 건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사형장(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이 보이지는 않는다.
건축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고딕적 요소가 극히 적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조선에는 고딕 양식의 건물이 전혀 없었다. 서양식 벽돌을 직접 굽고, 중국에서 들여온 자재로 성당을 짓는 일은 모험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지은 성당인데 불행하게도 1998년 2월에는 30대 취객이 성당 제단의 커튼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건물이 전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성 요셉상과 성모마리아상 등 주요 유물들이 화재로 소실됐다. 지금 성당은 복원된 새 건물이다.
성당 전망대 옆으로 조성된 ‘순교자의 길’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주님의 수난과 한국 순교자들의 용덕을 묵상하며 이 길을 따라내려 가면 서소문순교성지에 설치됐던 옛 순교자 현양탑이 서 있다. 중림동 약현 성당 마당에는 홀로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쉼터들이 군데군데 마련돼 있다. 도심 속에서 자연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터다. 나무들 사이에서 생명의 향기를 맡으며 기도에 취해 무상의 존재를 찾는 자리이다. 이렇게 중림동 약현은 성당 안팎 모두 기도의 공간이다. 한국 교회의 어머니 성당에서 어머니 품 같은 고즈넉함 속에서 다가온 가을을 만끽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