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성지
천호성지의 부활성당과 봉안경당
천주교인이라면 꼭 걷고 싶어 하는 세계 3대 순례길이 있다. 바로 예루살렘과 로마,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다. 이 순례 길의 종착지에는 각각 성당이 있고, 그 성당 제대 아래에는 무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 사도,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도 순교자의 무덤에 조성된 성지들이 여러 곳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성지가 바로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천호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호성지다. 천호성지는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글자 그대로 ‘하느님을 부르며’ 함께 모여 살던 교우촌이다.
전북 완주군 비봉면의 천호산(天壺山) 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호남지역이 자랑하는 대표적 사적지로 병인박해의 모진 회오리가 불어 닥치던 1866년 12월13일(음력)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순교자 중 이명서(베드로), 손선지(베드로), 정문호(바르톨로메오), 한재권(요셉)과 같은 해 8월28일(음력)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아우구스티노), 그리고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10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다.
전주에서 30km 남짓한 천호성지는 인근의 전주 숲정이, 여산 숲정이, 나바위, 초남이, 등 호남지역의 유명한 성지와 사적지를 지척에 두고 있어 순례길에 이들 성지들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주님과 함께 부활의 삶을 누리고 있는 순교자의 무덤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이정표이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는 길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명하는 것’임을 천호성지 순교자 무덤은 가르쳐주고 있다. 천호성지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이다. 호리병같이 좁은 입구를 지나자 너른 터가 나왔다. 잘 정돈된 잔디밭에 소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다. 성지 입구 주차장에 들어서면 먼저 실로암 연못과 저 멀리 산 중턱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천호 부활성당이 반긴다.
천호 부활성당은 순교자들의 무덤 아래 너른 잔디밭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마치 주님께서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예루살렘 골고타 언덕의 돌무덤을 연상시키듯 천호 부활성당은 회색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입구는 4m, 제단 외벽은 13m로 경사져 있다. 성지에 묻힌 순교자들이 주님과 함께 부활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단 벽면이 하늘로 솟구쳐 있다. 또 삼각형을 기반으로 한 다면체 구조로 지어,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띤다. 성당과 분리돼 있는 종탑에는 전주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종이 설치돼 있다.
성당 설계자는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안드레아) 명예교수다. 그는 “성당은 돌로 만든 기도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성당은 내세와 이 세상의 관계를 저쪽과 이쪽이라는 장소로 구분해 저쪽은 앞으로 올 세상과 하늘나라를, 이쪽은 이 세상을 나타낸다”고 했다. 무엇보다 건축물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물과 사물을 잇는 공간임을 중시한 그는 성당이 하느님과 인간을 잇고, 하느님 나라와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경계임을 분명히 했다. 그 중심이 바로 제대다.
성당 내부는 마치 무덤 같다. 어둠과 침묵만이 가득하다. 양쪽 벽 아래 가로로 뚫린 여러 창을 투과한 빛이 이 세상에 속한 회중석을 수평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또 제단 한쪽 벽면에 수직으로 꿰뚫은 색유리 창을 통해 제대를 비추는 빛이 하느님의 현존과 저쪽 하늘나라에 속한 순교자들을 드러낸다. 수직과 수평의 창을 투과한 빛은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십자가를 상징한다. 천호 부활성당의 내부는 제대를 비추는 이 십자가의 빛만으로 충만하다.
성당 내부 역시 서로 크기가 다른 삼각형으로 꾸며져 있다. 벽과 천장 모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나타내며 가장 완벽한 구도인 삼각 모양으로 조합돼 있다. 천호 부활성당은 ‘침묵’을 배우게 한다. 무덤 속 고요함에서 순교자들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 어둠 속의 빛은 드러나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체험하게끔 신비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이 이끄심은 그리스도의 희망과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게 한다. 150년 전 병인박해 순교자들이 소리 높여 기도하던 하느님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집, 천호 부활성당이다.
2013년 12월 14일에는 ‘천호 가톨릭 성물박물관’ 개관식 및 축복식을 가졌다. 한국 교회에서 최초로 건립된 성물박물관은 2008년 세계희귀 성물을 소장해온 오문옥 루치아씨가 성물 1000여점을 기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층 규모의 성물 박물관은 미사와 성사 관련 성물(1층 성 베드로관), 예수님의 강생과 수난과 부활관련 성물(2층 성 바오로관) 등을 관람하며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또한 2012년 완공된 “천호 성물공예마을”과 연계해 성물 제작 체험과 신앙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천호 성지 피정의 집에서는 다양한 위탁 피정과 순례자들을 위한 영성 피정을 연중 실시하고 있어 잠시나마 세파를 떠나 교요함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숲속에 위치한 특성을 살려 자연 친화적인 순례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개인이나 소규모의 피정을 원하는 순례자를 위해서는 피정의 집 부속으로 성지내에 김성첨 토마스 순교자의 5대손인 김경애 골롬바씨가 봉헌한 “토마스 쉼터”가 있어 보다 다양한 피정이 가능해 졌다.
천호성지 부활성당 내부
실로암 연못
피정의 집
봉안경당 기도실(성인유해실)
봉안경당 내부
세계 희귀성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