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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명상이 있는 청송

윤정규 2020. 6. 25. 01:56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요즘 누구를 만나러 나가기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 최소한의 사람과 접촉하면서도 풍광이 뛰어난 곳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는 상황에서 코로나 블루(우울증)’에 시달리던 내가 찾아낸 희망은 캠핑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즐기니 코로나19 감염이나 전파 걱정이 없다. 무엇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을 감상하다보면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니 요즘  캠핑에 푹 빠졌다. 사람들이 많지 않고 코로나19 걱정 없이 공기 좋고 산새가 좋은 청송, 그리고 내 고향 울진을 따라 가본다. 6월21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청송군으로 향했다.

캠핑의 매력은 무엇보다 자연 속 힐링이다. 신선한 공기를 폐 속 깊숙이 들이마시며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살다보면 길을 잃을 때도 있다.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그럴 때면 나를 내려놓자. 비워야 다시 채워지는 법. 아무 생각 없이 청정지역의 시골길을 걷다보면 머릿속은 맑아지고 가슴을 짓누르던 근심이 저절로 해결되기도 한다. 산속에서 길을 잃어도 괜찮다. 소소한 풍경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청송의 명소로 유명한 주왕산국립공원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00곳 중 다섯 번째로 선정된 바 있다. 보유하고 있는 9경 중 용추폭포 신록, 주산지 노거수 등은 관광객들이 땀을 식히며 시원하게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어 유명하다.

청송의 중심엔 산세, 물세 좋은 건 기본.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주왕산의 모습은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경북의 명산 주왕산이 푸르게 물들었다. 시원한 폭포소리가 주왕산에 울려 퍼진다. 돌개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는 산속에 청명한 호수를 만들었다.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3대 암산인 주왕산은 입구에서 보이는 3개의 바위 모습만으로도 압도당하기 충분하다. 한없이 깊은 산길은 암봉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폭포와 포근한 자연을 선사해 등산의 맛을 더한다. 주왕산의 모습은 꼭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고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골짜기 모두, 돌로 이루어져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며 샘과 폭포가 지극히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기암괴석 절경인 주왕산은 의외로 완만하고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정상인 주봉까지 오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 주왕산, 등재된 국립공원 중 가장 작은 면적이라고 하니 이 산의 매력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웅장한 물소리를 내는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는 짙은 물빛과 함께 장관을 이루고 혈암, 장군봉, 기암, 연화봉이 펼쳐지는 풍경을 한눈에 바라보며 오르는 등산길은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몸 안에 온통 푸른 기운이 가득차는 기분이랄까. 주왕산을 오르는 길에 들리게 되는 대전사(大典寺).대전사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대전사 뒷편에 솟은 흰 바위봉우리는 마치 사이좋은 형제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 기암은 화산재가 용암처럼 흘러내려가다 멈춰서 굳은 회류응회암으로 여느 산에서 볼 법한 화강암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모양과는 달리 매우 매끄러워 보이는 게 특징이다.

당나라 덕종 15년, 동진의 주도는 스스로를 후주後周의 천황天皇이라 자칭하며 군사를 동원하여 수도 장안을 공격했다. 그러나 곽자의에게 참패하자 소수의 병력과 가솔을 거느린 채 요동을 건너 신라 땅에 잠입, 주왕산으로 들어와 재기를 꾀한다. 그러나 당나라의 요청을 받은 신라군의 대장 마일성의 손에 최후를 마쳤다. 그때 마일성 장군이 대장기를 꽂았다는 바위가 이 기암이다. 이 기암이 굽어 살피는 듯 보이는 대전사.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1507호로 지장된 보광전 이외에도 명부전, 산령각, 요사채 등이 있고 명부전 안에 있는 지장삼존 및 시왕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엇보다 절을 휘어 감싸는 경치가 사계절 모두 훌륭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절이다.

대전사로 향하는 길 양옆으로 주왕산을 오르는 등산객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즐비한데 산채비빔밥이나 도토리묵, 더덕구이 정식으로 한 끼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는 맛 집들이 많다. 특히 3대가 함께하는 명일식당의 산채비빔밥의 맛은 보는 것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데 입에 넣자마자 달콤 쌉사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더덕구이를 입에 넣는 순간 행복한 고민이 온몸에 퍼진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목공 소품, 시골장터에서 봄직한 아기자기한 상점, 커피 한 잔 하기 좋은 카페 등 그 긴 행렬이 지루하지 않다.

2017년 상주-영덕 구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이제 서울에서 서너 시간 만에 갈 수 있는 청송. 하지만 제대로 교통이 발전되기 전엔 ‘올 때 힘들어 울고 떠날 때 아쉬워 운다’는 곳이 청송이었다. 비싼 다리품을 팔아 어렵게 당도하면 수많은 비경과 선한 인심에 빠져 쉬 돌아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주산지는 신의 영역인 듯한 영험한 풍경으로 멀리 달려온 피곤함을 한번에 날리기에 충분하다. 물과 나무, 세상 흔하디 흔한 이 몇 가지 단출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완성품은 상상 이상이다. 그저 아름답고 황홀하다.

청송 장전리 향나무

많은 사진작가들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일출과 함께 드러내는 장관을 담기 위해 수없이 찾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 감동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 목도하니 ‘나도 내일 새벽에 물안개 피는 그 장관을 보고 싶은 욕심이 일어났다. 24시간은 물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모두 담아내도 모자람이 없는 큰 그릇이다. 300년 전, 1720년 8월 조선 경종원년에 만들어진 곳인데 준공 이후 현재까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밑바닥이 드러난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비가 오면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물을 흘러 보내는 퇴적암층이 바닥에 있어 풍부한 수량을 유지할 수 있다니 당시 만든 저수지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신기하다. 더욱이 150여 년이나 묵은 왕버들 나무들이 물속에서 자생하고 있는데, 물그림자와 함께 어우러진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선녀가 정말 내려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사람을 실없이 만드는 곳, 위대한 자연 앞에선 이렇게 인간은 작아져 버린다.

글·사진=윤정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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