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구두와 인간관계
얼마 전에 새 구두를 신었다. 조금 걷다 보니 오른쪽 발뒤꿈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직 길이 들지 않은 구두의 단단한 가죽과 발뒤꿈치가 반복적으로 마찰을 일으킨 탓이다. 하는 수 없이 피부가 벗겨지지 않도록 오른쪽 발뒤꿈치를 든 채 앞꿈치로만 뒤뚱거리며 걸었다.
새로 산 구두는 자기 발과 안 맞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화를 내며 구두를 집어 던지는 사람은 없다. 내 발이 구두와 맞을 때까지 가만히 참고 기다린다. 조심스럽게 얼마쯤 신고 다니다 보면 내 발과 구두가 친근해지는 시기가 온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그런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각자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다. 아무리 천생연분일지라도 두 사람의 성격이나 생각이 서로 일치할 수 없다. 새 구두처럼 서로 맞추어 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상대방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라.” 인디언 부족에 전해 내려오는 금언이다. 모카는 한 장의 신창과 갑피를 사슴 따위의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인디언 구두를 가리킨다. 남의 모카신을 신고 다니면 자기 발에 맞지 않아 물집이 잡힐 것이다. 상대를 탓하기에 앞서 인내심을 갖고 상대의 처지에서 바라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새 구두의 지혜가 절실한 곳이 부부관계이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는 새 구두처럼 잘 맞지 않아 삐걱거리기 일쑤이다. 내 발이 아픈 것이 구두의 잘못이 아니듯이 부부의 갈등은 상대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둘의 성격과 성장 환경, 경험이 달라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그러기에 서로 상대에게 길들여지도록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성숙된 자세가 요구된다.
인디언 사회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없다. 그 대신 ‘사랑한다’와 ‘이해(理解)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함축한 ‘킨(kin)’을 즐겨 사용한다. 킨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여 감정이 충만한 상태’를 가리킨다.
사랑은 '이해(利害)'가 아니라 이해(理解)이다. 사랑이 꽃이라면 理解는 물이다. 이해의 물이 고갈되면 사랑의 꽃은 시들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