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줄이려면 의료사고 통계 만들어야
분쟁소송 이기려면 의료인 과실 입증자료 절대적
환자가족 패배 원인은 전문의사 감정 제대로 못받아
‘가재는 게편’ 결정적 증거 없으면 소송 못 이겨
의료분쟁 사회적문제로 부각 의사 특권의식 버려야
우리나라 건강복지정책(국민보험공단)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모범정책이다. 하지만 의사와 약사의 과실로 이어지는 ‘의료사고’정책은 후진국 수준이다.
의료사고는 전국 의료기관(약국포함)에서 알게 모르게 하루에도 수없이 발생한다. 교통사고, 화재사고, 추락 등 안전사고 등은 통계자료가 있지만 의료사고는 통계조차 없다. 때문에 의료사고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고 매년 증가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의료사고란?
의료사고란 환자가 의료인으로부터 의료혜택을 제공받음에 있어서 예상외로 발생한 악결과(惡結果)"를 뜻한다. 악결과란 대개 진료나 치료 과정에서 어떤 원인이든 간에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법 제27조제1항 단서 또는 약사법 제23조 제1항 단서에 명시돼 있다.
의료사고의 책임한계는 법으로도 명시되어 있지만 의료인의 과실을 입증하기에는 애매모호한 것이 존재한다. 일반인과 의료인의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가장논란이 많은 부분이 ‘부작용’이다. 부작용의 경우 의료사고 범위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작용을 예측하고 컨트롤하는 것이 의료인의 할 일이기는 하나, 그 과정에서 의료인의 직접적인 과실이나 부주의가 없었다면 대부분 면책을 준다. 인체가 언제나 인간의 예상대로 움직여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표준화된 공산품이 아니고 처치와 약제에 대한 반응도 모든 환자가 다르다. 즉 의료인의 입장에서 부작용은 자신의 과실이 아닌데, 현대 의학에서 이 부작용이 확률적으로 나타나고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이 체질 치명적 환자 구분 어려워
비교적 잘 알려진 아나필락시스 반응 같은 알러지 반응은 드물지만 매우 치명적인데 환자가 기왕력이 없던 이상 예측하거나 미리 진단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각종 수술 부작용이나 병원 내 감염도 확률적으로 몇%에선 일어난다는 것이 이미 의학적, 통계적으로 증명되었고 관련 데이터도 매우 많다. 즉 아무리 의료진이 손 소독을 열심히 하고 병원 내 환경을 청결히 유지해도 병원 전체를 멸균할 순 없기 때문에 일정 수의 병원 내 감염은 일어나게 되어있고 아무리 숙련된 의료진이 명백한 과실 없이 말끔하게 수술을 끝내도 예상 못 한 악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의사가 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환자가 어떤 특이체질이거나, 해부적 구조가 상이하거나, 정말 꽉 묶고 두 번 세 번 확인했는데도 실밥이 풀리거나 봉합부에서 누출이 생기거나 하는 것을 100%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애매모호한 의료분쟁사건에서 의사의 승소율이 높아짐을 악용한 나쁜 의료진도 많다. 좋게 이해하면 자본주의 원리를 추구하는 병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박애정신을 망각한 변질된 병원이 늘어나면서 근원적 의료계 생태계를 흔드는 ‘돈팔이(환자를 돈으로 보는 돌팔이 의사)’가 판을 치는 세상이 돼 버렸다.
▶ 권대희 사망사건과 어머니의 눈물 잊지 말아야
전도가 촉망되는 권대희씨(25 사망, 제대 후 복학대학생) 의료사고를 보라. 지난 21일 법원은 서울 강남구 서초동 K성형외과 원장 징역3년과 벌금 500만원, 마취과의사 이모 씨에게 금고2년 집행유예 3년 벌금 500만원, 지혈담당의사 신모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 했다.
이런 판결이 나오기까지 꼬박 5년3개월이 걸렸다. 이 5년 3개월의 시간은 숨진 권씨의 어머니에게는 한숨과 눈물의 세월이었다. 병원 측은 “수술과정의 실수가 아니라 환자의 이상체질이 사망원인”이라며 책임을 회피했고 경찰은 “의료사고에 따른 입증이 필요하다”며 증거자료를 요구했다. 피해자 어머니는 아들의 수술실 CCTV를 수집하는 등 억울한 사망원인의 진실을 밝히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냈는지 그 긴 세월의 힘든 행적이 짐작된다.
또 서초구 방배동 관절전문병원 Y병원 원장의 횡포도 ‘돈팔이 의사’의 표본이다.
전직 언론인 윤모씨가 어처구니없이 당했다. 단순 ‘오십견’을 ‘어깨파열’로 오진한 것이다. 오십견 진료는 돈이 안 되니까 어깨파열로 진단하고 수술을 권했다. 수술비가 250만원 이었다.
윤씨는 Y병원의 검진결과에 대해 의심이 들어 처음 ‘오십견’ 진단을 받은 동네 정형외과와 목동 이대병원을 찾아가 재검진을 의뢰했다. 역시 오십견 진단이 나왔다. 윤 씨는 어깨파열이라며 수술을 권유한 “방배동Y병원 원장의 해명을 듣기위해 찾아갔는데 원장이 MIR를 보고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보지는 않고 이대목동병원의 S교수를 욕을 하면서 간호사에게 경찰을 불러”하며 그래서 윤씨는 따졌고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다 원무과 직원들에게 쫓겨나왔다.
윤씨는 ‘이런 파렴치한 병원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경찰과 검찰의 문을 노크했다. 그러나 시간만 낭비했다. 오진의 경우 형사처벌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어쩔 수 없이 민사법원을 찾았다. 정황상으로는 오진이 맞는데, 민사송에서도 판사는 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진이냐 아니냐’의 판단을 판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감정의뢰를 받은 전문의사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편’이라는 속언처럼 마침 감정의사는 Y병원장의 대학 동문이며, 학계논문 공동저자로 밝혀지면서 공정성을 잃은 감정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위의 사례 2건을 비교하면 의사의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의료진의 책임을 인정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런 케이스가 누적되면서 "의료 소송은 무조건 의사가 이긴다." "의사가 지식을 독점하니 사건의 책임을 은폐하기도 쉽다." 등의 이야기가 사실처럼 통하게 된다.
8월19일자 CBS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대는 최근 관절전문병원인 방배동 연세사랑병원에서 '대리 수술'정황을 포착, 해당병원 압수수색에 나서 관련자 휴대전화 압수 및 대리수술 증언 등 의혹을 밝힐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휴대전화 포렌식 분석이 끝나는 대로 피의자 소환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상업화로 치닫는 병원 과잉진료 없애야
구조적인 모순을 줄이기 위해 입법부 노력의 흔적도 보인다.
국회는 의료계의 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사고 방지책으로 수술실 CCTV설치 의무화 개정법안을 최근 통과 시켰다. 하지만 수술실 CCTV설치의무화에 대한 실효성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드라마 ‘하얀거탑’의 대사 “그래 나도 알아, CCTV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쯤은…” 드라마 대본이 말해주듯 보편화된 CCTV의 조작과 삭제기술로 인해 CCTV의 존재가치가 희석됐음을 의미한다.
이제 의료분쟁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의사집단의 특권의식이 팽배해 질뿐 아니라, 의료업계는 거대한 사회적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 되어 치외법권 지대에서 존립하게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또 하나의 양극화현상이 심화되어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하는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뿌리 채 흔들릴 수 있다.
선결과제는 매년 의료사고 통계부터 시작해서 국민들이 의료분쟁에서 남모르게 흘리는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