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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쿠버 동계 올림픽

윤정규 2012. 4. 26. 12:32

 

잔치는 끝났다. 멋지고 화려하게. 받아 놓은 밥상의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진수성찬이 넘쳐 났다.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벵쿠버 동계올림픽의 대략적인 계산서가 그렇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차려 놓은 대회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떠올랐다.

우리의 젊은이가 자랑스러웠다. 대한민국의 가능성이 밝았다. 우리의 미래가 무한하였다. 누가 요새 젊은이는 안 된다는 망발을 했던가.

 

빛이 밝으면 어둠 또한 짙은 법. 눈 못 뜰 만큼 찬란한 올림픽의 밝은 빛 저쪽에 웅크리고 앉아서 차가운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어둠의 진실. 공포의 존재다. 오금이 저려 마주친 눈길을 피할 용기조차 상실했다.

공포의 괴물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실상이었다. 시합이 끝나면 조명등은 1등에게만 비춰진다. 세상이 변했는지 죽도록 고생만 하고 메달을 못 딴 비운의 선수도 끼워 넣으려는 배려도 혹간 눈에 띄었다. 위로와 격려를 곁들인 찬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탕발림이었고 5분도 못가는 립 서비스였다. 파티는 계속되고 먹을 것, 볼 것은 많이 남았는데도 선수촌에서 쫓겨나다시피 해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싣는 노 메달의 선수들. 그들은 멀리서 숨죽여 메달리스트의 개선 행진을 지켜보는 슬픈 관중이 될 수밖에 없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곁에 그의 동생이 생글생글 웃고 있다. 1등은 찰나에 존재할 뿐 영원한 존재는 아니라고. 1등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우리의 청춘처럼 수명이 짧다.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여자 쇼트 트랙은 노 골드로 추락했다. 자만하여 한 눈 팔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가를 보여주는 비극의 드라마였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오늘 겪고 있는 저 위기와 고통이 이에 다를 바가 무엇인가.

사람에게 잊혀 지지 않으려면 일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한 시도 졸지 말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 아니 진리를 보여준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이 현실을 외면하거나 부정하려 드는 세력이 용을 쓴다. 언필칭 ‘한 줄 세우기 문화’에 쌍심지를 켜며 팔을 걷어 부치는 그 시대착오적인 오만함이다. 세계사의 흐름에 눈 감은 맹목이다. 쏟아지는 홍수를 신문지 하나로 가려보겠다는 어리석음이다.

 

승자와 패자가 없는 세계,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세계, 토끼와 사자가 벗하고 개구리와 뱀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불행히도 그것은 '현실에 없는 세계'(Utopia)요 백일몽이다. 마루 소파에 기대 동계 올림픽의 쇼를 지켜보면서 세계는 저렇게 잔인하게 경쟁의 세계로 내몰고 있는데 우리는 평등의 ‘헛것’을 붙잡고 세월을 허송했구나 하는 만각이 찾아든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 통을 앓는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 길 없는 숙명이요 거쳐야 할 도정이다. 그 험로에서 어떤 이는 좌절하고 주저앉고, 심하면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간다.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일분일초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이승이다. 오죽했으면 세상을 고해라고 했을까.

 

1등만 강요하는 한 줄 세우기 문화 속에서 탈출구는 없는가. 이 세상에 천국은 없는가. 아니다. 부처는 고개를 돌리면 피안이라고 했지 않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산이 오지 않으면 내가 간다는 말처럼 1등의 휘황찬란한 등불 뒤에 가려져 있는 슬픈 현실을 직시하는 지혜가 요청된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1등은 얼마나 힘든 존재인가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합 후 김연아 선수는 운동을 시작한 이후 세끼 식사 이외에는 간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먹고 싶은 것이 많은 십대에 군것질 한 번 없었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통곡이요 절규였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가능하겠어요…”라며 방어선을 친다. 아서라 저런 1등은 나는 원하지 않는다. 능력도 없지만.

 

우리처럼 행복타령에 목을 맨 나라나 민족도 찾기 힘들 것이다. 각종 기구 등에서 행하는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최저로 나온다. 모두가 스스로를 한 없이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을 ‘더러운 세상’이라고 매도하고 한줄 세우기 문화를 타파하려는 수고도 그런 심경을 반영한 것으로 짐작한다.

외부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한 인간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찬 불행한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지 외부에 있지 않음을 이번 올림픽이 또 다른 각도에서 세상에 던진 교훈이다.

우리는 그간 행복을 핑계 삼아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경쟁을 막아보려고 안간 힘을 썼다. 능력 있고 재주 있는 사람은 경쟁의 바다에서 헤엄치게 해야 한다. 범인들까지 그 바다에서 허우적댈 필요는 없다.

1등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경쟁의 생지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음을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우리는 오해하고 있다. 1등만 기억한다고. 아니다. 세상은 1등도 기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