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의대 교수의 동문병원을 위한 허위감정 논란은 허위감정에 무기력한 법원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법정에서 선서를 하지 않는 한 허위감정서를 제출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을 수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연세대 의대 정모 교수(39)를 지난 7월 허위감정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전직 언론인 윤모씨(63)는 23일 “당연히 응분의 처벌이 있을 줄 알았는데 검찰에서 무혐의 결정 통보를 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가 ‘정 교수가 허위감정을 한 점은 인정되는데 아무리 법전을 뒤져봐도 처벌할 조항이 없다’고 했다”며 허탈해했다.
형법 154조에는 ‘선서한 감정인’만 허위감정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어 법정에서 선서하지 않는 이상 허위감정서를 제출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에 제출한 진료기록감정서는 허위진단서로 볼 수 없어 형법 233조 허위진단서 작성죄로도 처벌이 불가능하다.
결국 판사가 감정 결과를 꼼꼼히 살펴보고 의사를 법정으로 불러 선서 후 증인신문을 하는 방법밖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판사가 의사의 감정 결과를 판단할 전문성도 없는 데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증인신문 절차를 생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법원은 외부감정을 맡길 경우 당사자 간에 질문내용을 서로 조율할 기회를 주고 감정 결과가 나와도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를 보장해주도록 노력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윤씨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심 모 판사(63)는 감정을 의뢰하면서 피고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질문지를 보냈고 감정 결과에 대해서도 원고 측의 재감정 요구를 무시했다. 게다가 피고 병원 의사들과 선·후배로 얽혀 있는 대학병원에 감정서를 보냈다.
서울중앙지법 김신유 공보판사는 “감정기관 선정은 자동추첨 방식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법원 직원들의 자의가 개입할 소지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취재결과 법원 직원이 임의로 특정한 기관을 넣거나 뺀 채 추첨을 해도 로그파일이 남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 직원의 선의 외에 공정 추첨을 보장할 시스템이 전무한 것이다.
법률사무소 율현의 강병국 변호사는 “법원에 허위문서를 제출해도 처벌하지 않는 것은 증거 채택 여부에 대한 책임이 판사에게 있기 때문인데 판사들이 판단하기 어려운 전문가 감정서의 경우는 공무집행방해죄 적용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