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봄날 여행하고 싶은 계절 5월1일 나는 성지순례를 떠났다. 첫 번째 장소를 남양성지를 정하고 서서울 IC를 지나 비봉IC를 경유 남양성지를 찾아 가려다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비봉IC를 지나쳐 버렸다. 그래서 첫 번째로 공세리 성당으로 다시 정하고 마지막 돌아올 때 남양성지를 들러 가리라 다짐했다.
충남 아산은 역사의 향기와 휴식의 편안함이 공존하는 도시다. 시간과 국경을 넘나드는 명소가 거리마다 펼쳐지고 온천으로 당일 여행을 마무리하면 일상에 찌든 피로를 한방에 날려보낼 수 있다.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자리한 ‘공세리 성당’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톨릭 교회로 꼽히고 한반도 전체에 걸처 아홉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자 대전교구 첫 번째 성당이다.
입구에서부터 색이 펼치는 화려한 공간에 푹 빠져본다.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의 공세리 성당과 함께 시야에 잡히는 것은 나무들이다. 느티나무는 넉넉한 품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붉은 벽돌과 뾰족한 지붕 위에 꼿꼿이 솟은 십자가는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될 만큼 경건한 자태를 뽐내며 각박한 생활 속에 파묻혀 응어리졌던 마음들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뽑은 거목, 노목들이 성당을 둘러싸고 있다. 성당 자체의 모습도 빼어나지만, 그 주위의 나무들과 어우러진 모습에 반하게 된다. 이맘때는 성당전체가 붉은 꽃 붉은빛으로 어우러져 있다. 붉은 벽돌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고, 사이사이 쌓인 회색벽돌의 질서정연함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기에 벽에 새겨진 흰 문양들은 단조로울 수 있는 성당 건물에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화려함을 더해준다.
성당 입구로 향하는 계단에서 바라보는 정면 모습과 계단을 올라 맞는 성당의 옆 모습은 또 다른 분위기다. 이때도 나무들이 한몫한다. 정면이든 옆면이든 오롯이 성당만 볼 수 없다. 성당의 일부를 가린나무들이 12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는 성당과 세월을 함께하는 존재라는 듯 보는 이에게 자신을 각인시킨다. 성당과 주위 모습이 잘 어우러져 이런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성당 주변의 팽나무, 느티나무 등 5그루의 보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 자체만으로도 범상치 않은데, 오랜 성당과 함께하고 있으니 양쪽이 서로를 더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본당 뒤로 이어지는 작은 숲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길로, 사형선고로 시작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아 묻히는 과정을 14처에 담았다.
14처를 걷다 보면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은 어느 새 걷는 이의 마음까지 만져주고 간다. 성당 맞은편 박물관엔 이 성당에 1895년 부임한 프랑스 에밀 드비즈 신부가 사용한 찻잔과 안경, 낡은 의자들이 전시돼 있다. 나이 지긋한 이들이면 알 만한 ‘이명래고약’도 이곳에서 나왔다. 드비즈 신부는 프랑스에서 익힌 방법으로 원료를 구해 고약을 만들어 나눠줬다. 이를 배운 이가 이명래다. 이후 ‘이명래고약’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퍼지게 됐다.
처음 온 이들도 어디선가 본 듯하고, 우리나라의 오래된 성당이라면 이 같은 분위기를 떠올릴 듯싶다. 직접 오지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이 성당을 봤기 때문이다. 공세리성당은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에덴의 동쪽 아내가 돌아왔다’ 등 7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