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10시까지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는 나는 5월의 마지막 날 1박2일 일정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가 위해 오전 7시에 일어났다. 9시에 캠핑카에 몸을 싣고 충북 괴산 연풍 순교성지로 향했다.
연풍성지는 박해가 계속되던 시절. 연풍의 산간 지역은 신앙을 지키려는 선조들이 문경 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경상도 문경 상주로 피신하는 길목이 되었다. 그들은 연풍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렸고,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고개를 넘는 순간에도 틈틈이 기도를 바치곤 했다.
최양업(토마스) 신부님과 프랑스 선교사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님도 연풍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교우촌을 순방했다. 그럴 때면 신부님들은 연풍 골짜기에 숨어살던 교우들을 방문하여 비밀리에 성사를 주었다. 이내 연풍은 경상도와 충청도의 신앙을 잇는 교차로가 되었고, 신앙 선조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수많은 교우들이 이곳에서 체포되어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연풍 병방골(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은 황석두 루가(1813~1866) 성인의 고향이다. 그리고 연풍 성지는 성인의 묘소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성인은, 부친께서 천주학을 버리든지 작두날에 목을 맡기든지 하라고 강요하자 결코 진리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작두날에 목을 디밀었다. 성인은 아내와 동정 부부로 살면서 일생을 교회에 헌신했고 그러다가 병인박해 때 다블뤼(안돈이 안토니오) 주교님, 오메트르(오 베드로)와 위앵(민 루가) 신부님, 장주기(요셉) 회장님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성인의 시신은 갈매못에서 홍산 삽티(부여군 홍산면 상천리)를 거쳐 고향 병방골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오랜 노력의 결과 1979년에는 그 묘소가 발견되어 3년 뒤 연풍 성지로 천묘되었다. 연풍성지에는 십자가의 길, 다섯 성인상, 향청(옛 공소) 황석두 루카 성인묘, 형구틀, 중앙제대, 십자가(순교터), 순교헌양비 등이 있다.
정오의 연풍순교성지 풍경은 그야말로 고요함만이 흐른다. 마음이 복잡함으로 마음의 평화가 필요할 때 주변을 산책하듯 둘러보는 것도 나름의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늦은 봄에 보여주는 풍경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보면, 다른 계절에는 훨씬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섯성인상이 있는 연풍성지는 첫째로 신앙의 길목으로 박해를 피해 비교적 쉽게 탈출할 수 있는곳으로 둘째로 성 황석두 루카의 고향이자 넋이 잠들어 있는 안식처이며 세째로 황석두 성인의 모범적인 평신도의 삶을 보여주는 곳이며 네째는 다섯성인 토마스 신부 및 신앙선조들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돌 가운데 원추형으로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은 것처럼 보이는 교수형 형구돌이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수 없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각처에서 체포되자 박해자들의 손쉬운 처형 방법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형구돌'이다. 연풍순교성지에서 모두 4개의 형구돌이 발견됐는데 1964년 발굴된 첫 번째 형구돌은 절두산순교기념관에 기증되었고 현재 3개의 형구돌이 남아있다. 형구돌 직경은 1미터 둘레 4~5미터에 원추형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형십자가가 자리한 곳은 당시 사형장으로 옥터 또는 도살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죄인들이나 천주교를 믿다가 잡혀온 교우들이 형방건물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뒤 처형당하기도 했다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2013년 성 황석두 루카 탄생 200주년 기념 성당으로 건립된 성당의 내부를 둘러본 뒤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장소이기도 한 연풍순교성지에서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를 올렸다.
성 황석두 루카 묘소
한국인 초대 노기남 바오로
다섯 성인
♪ 가톨릭성가 286번 / 순교자 믿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