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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머리성지

윤정규 2019. 8. 2. 04:01

원머리 성지는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평 성당에서 북쪽으로 약 3정도 떨어진 곳으로 과거 지명은 원머리이다. 원머리라는 지명은 바닷가에 둑을 쌓기 시작한 곳이라는 뜻에서 나온 언머리가 변형된 것이며 염전과 농사를 주로 하며 살던 박씨, 양씨, 조씨, 문씨 등이 신앙을 받아들여 병인박해 때는 이미 상당히 큰 교우촌으로 성장하였다.

 

마침내 이곳에도 박해의 광풍이 몰아쳐 1866년부터 1868년까지 3년 여에 걸친 박해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게 되는데 지금 한정리에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박태진(마티아)과 박선진(마르코)은 무진년(1868) 수원 감옥에서 순교한 분이다.

 

순교자 박선진(마르코)의 아우 박요셉은 1920년대에 형의 순교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마르코는 모친의 뜻을 따라 착실히 수계하면서 모친과 함께 동네 교우들과 연락하고 지냈다. 신부님이 오시어 성사를 받으려 하면 부친이 금하는 고로 이를 마음속으로 꺼리더니 무진년(1868)에 수원 포교에게 체포되어 잡혀 갈 때 그는 부모에게 하직하며 위로하길 '거기 가서 죽으면 육정의 박절함이 없을까만은 주 명대로 위주하여 죽는 것이 구령에 편한 일이라, 부디 염려 마시고 훗날을 조심하십시오'라고 한 다음 그 사촌 형 마티아와 함께 수원옥에 갇혔다."

 

모진 고문을 당할 때 마티아가 이를 못 이겨 배교하려 하자 "천주를 배반하고 영벌을 받으려 하느냐?"고 형을 깨우쳐, 이에 박태진 마티아는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옥에 갇힌 지 15일 후 같이 순교하였는데 죽은 후 시체를 찾아 이 곳 원머리에 안장하였다. 이 때 마르코의 나이는 33세였고 마티아의 나이는 52세였다.

그 후 박선진(마르코)과 박태진(마티아)의 묘는 198944일 신평 성당 구내로 옮겨 모시고 현양비를 세웠다.

 

이외에도 순교로 신앙을 증거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원머리(신평)출신 14분 순교자들의 기록을 치명 일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양 도미니코 회장, 박 회장, 유서방, 김동 4인은 정묘년(1867)에 홍성(홍주) 감옥에서 순교하였으며, 최 베드로, 김 루치아, 김 마리아, 원 아나스타시아 4인은 무진년에 홍주에서 같이 순교하였으며, 원씨, 김 마리아 2인이 홍주에서 정묘년에 순교하였고, 최 아우구스티노, 홍 베드로닐라, 양정수, 양 아우구스티노 4인이 병인년(1866)에 홍주에서 순교하여 치명 했으니 이 곳 원머리에 얼마나 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던가를 알 수 있으며, 순교자들의 신심이 얼마나 깊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후 2000년 성전을 신축하면서 재정비 했다가 2009년 교구 성지 위원회의 결정과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의 재가를 얻어 순교자 현양과 성지 개발을 위해 그해 113일 본래 모셔져 있던 원머리로 유해를 옮겨 모시고 현양비도 수정하여 세우고 재정비 하였다. 신평원머리성지내에도 20 여년 간 모셔져 있던 자리에 기념비가 건립되어 순교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