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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리 순교사적지

윤정규 2019. 8. 3. 02:50

부여읍에서 서천 방면으로 4번 국도를 가다보면 홍산면 소재지에 이른다. 여기서 좌측으로 난 613번 지방도를 따라 3.4쯤 가면 일흥 주유소가 있는 삼거리가 된다. 여기서 충화쪽으로 계속 직진하면 2.8지점 길 좌측에 순교사적지가 있다. 지석리는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치명한 손선지 베드로와 정문호 바르톨로메오의 고향으로 두 순교자의 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성지다.

 

손선지 베드로 성인은 1820년 아버지 손달원과 어머니 임 세실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영세를 받고 아버지 밑에서 직접 교리교육을 받으며 신심을 키워나갔다. 183717세의 나이로 샤스탕 신부로부터 전교회장으로 임명돼 활동했으며 김 루시아와 결혼 후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충남 진잠 장안리로 피신해 살던 중 장남 손순화 요한을 낳았다. 그 후 전라도로 이주해 여러 곳을 배회하다 이곳으로 온 후 전교회장으로 활동했으며 그의 집은 공소로 사용됐다. 1866125일 저녁 전주 감영에서 나온 포교들에게 잡힌 그는 단호히 배교를 거절했다. 12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사형이 집행돼 47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인은 일명 기식이라고도 하며 1801년 충남 임천에서 태어난 그는 한때 고을 원님을 지낸 바 있는데 손선지의 영향으로 입교 한 후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고향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다가 동향인인 손선지가 이주해 살고 있던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 신리골에 정착했다. 그는 학식이 많고 신앙심이 깊어 외교인과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고 수계 생활을 도와주었다. 그러던 중 1866년 병인년 가을, 한동안 잠잠하던 박해의 손길이 그가 살던 신리골에도 뻗쳐오기 시작했다.

 

그해 125일 저녁 담배농사를 주업으로 하던 신리골에 담배를 사러 상인들이 출입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주 진영의 포교들이 담배상인으로 가장하고 정문호의 집으로 들이닥쳐 압송을 한다. 이곳에는 앞서 잡혀온 조화서, 조윤호 부자와 이명서, 정원지 등의 신자들도 있었다. 노구의 정문호는 3차에 걸쳐 심문을 받는 동안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순간적이나마 마음이 흔들려 배교하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치명하자는 조화서의 권고와 격려를 받고 마음을 바로 잡아 치명키로 결심했다. 1213일 그는 65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두 성인의 무덤은 같은 날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한재권 요셉 성인과 함께 천호 성지에 있다. 비신자로서 지석리에 살고 있던 손선지 성인의 종씨들이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손 성인의 시성비라도 세워 달라고 홍산 성당에 밭을 기증해 그 자리에 두 성인의 뜻을 기리는 시성비가 세워져 있다

 

지석리 순교 사적지에서 12일의 "순례를 마치면서 기도"를 드렸다.

 

주님.

오늘 저의 발걸음을 이끌어 주시고

모든 일에 함께하여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기뻤던 시간들, 힘들었던 순간들을

주님께 봉헌하며 청하오니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

가족과 이웃에게 주님의 참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아울러 이 세상에 살면서도

늘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지상의 나그네로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굳은 믿음과 희망을 지니게 하시고

이 순례의 끝에 주님께서 마련하신 사랑의 천상 잔치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