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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당고개 성지

윤정규 2019. 9. 7. 02:57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 아시아 최초로 교황청 승인 세계 국제 순례지로 선포됐다. 교황청 승인 세계 국제 순례지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바오로 성당과 참수터 등으로 구성된 바오로 순례지, 성모 마리아 발현지 등이 있다. 천주교 서울 순례길은 '말씀의 길' '생명의 길' '일치의 길' 3코스로 구성돼 있다.

 

1코스인 말씀의 길은 한국 천주교의 시작을 보여주는 명동 대성당, 장악원 터(김범우의 집), 이벽의 집 터(한국천주교 창립터), 좌포도청 터, 종로성지성당, 광희문, 가톨릭대 성신교정, 북촌한옥마을 석정보름우물, 가회동 성당까지 총 8.7km에 이르는 구간이다.

 

2코스 생명의 길은 옛 순교자들의 족적을 더듬어 보는 코스로 가회동성당에서 시작해 광화문 시복 터, 형조 터, 의금부 터, 전옥서 터, 우포도청 터, 경기감영 터, 서소문밖네거리 순교성지, 중림동 약현성당로 이어지는 5.9km에 이르는 길이다.

 

3코스 일치의 길은 중림동 약현성당, 당고개 순교성지, 새남터 순교성지, 절두산 순교성지, 노고산 성지, 용산성심신학교, 왜고개 성지, 삼성산 성지로 짜여져 있으며 29.5km로 세 코스 중 가장 길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서는 "말씀의 길과 생명의 길이 합쳐져서 일치의 길을 이루었다는 의미와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천주교 서울 순례길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20139'서울대교구 성지 순례길'을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계기로 서울시를 비롯해 서울 중구, 종로구, 용산구, 마포구 등 4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천주교 서울 순례길'을 만들었다.

 

나는 첫날에 이어 3코스 당고개 성지, 용산성심학교, 중림동 약현성당, 노고산 성지로 향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남영역 쪽으로 잠시 걷다 보면 고가도로가 나온다. 고가도로 밑으로 좌회전으로 걸어가면 대단지의 이편한세상 아파트가 있다. 그곳이 바로 당고개 순교성지다.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아파트들이 우뚝 솟아 있고, 순교성지와 함께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지하1층에는 성당과 전시관,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고 잔디 광장인 지상 1층에는 당고개 순교자들을 표현한 청동 부조상과 야외 제대와 십자가의 길 등이 조성되어 있는데 나도 모르게 아~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연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아름답게 조성된 성지가 서울에도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이편한세상 아파트 주민들은 자동문을 열고 나오면 성지의 하늘정원이다. 사진을 찍다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내가 아주머니에게 이 아파트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내가 이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은 모두 축복받은 분들이라고 하였더니 맞습니다. 라고 한다.

 

그 아주머니의 말씀이 처음 여기에 성지를 새롭게 공사한다고 할 때 아파트 주민들이 엄청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고 보니 우리 아파트가 새롭게 보이드라고 말하면서 아름다운 성지 때문에 아파트 가격도 엄청 올랐단다. 당고개 순교성지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10명의 순교자 이름이 나오는데, 9명은 성인이고, 이성례 마리아 1명만이 하느님의종'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 까닭이 궁금했다.

 

이곳에 모셔진 10인은 조선말 1840년 기해박해 때 처형당한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이들이 처형된 날짜는 음력 1월 31일과 21이었다. 기해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는 용산 새남터와 서소문밖(지금의 서소문밖 네거리 성지)이었다. 박해가 끝나갈 무렵 10명의 처형일이 1227일과 28일로 잡혔는데, 며칠후가 설날이었다. 서소문 일대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설날 대목이 방해되지 않도록 처형장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선택한 곳이 용산의 야트마한 언덕이었다. 이에 따라 서소문 밖 형장을 피해 조금 한강가로 나간 곳이 당고개 이다. 1840131일과 21일 양일에 걸쳐 10명의 남녀교우들이 순교함으로써 기해박해를 끝맺은 거룩한 곳이다.

 

그러면 10명 가운데 이성례 마리아만이 왜 성인이 아닌, ‘하느님의 종이 되었을까. 이성례 마리아는 천주교 신자인 최경환(崔京煥)의 부인으로, 여섯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맏아들이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이다. 기해박해 당시 맏아들 최양업은 마카오로 유학을 가 있었다. 기유박해가 일어나자 포졸들이 안양 수리산에 있던 교우촌으로 들이닥쳤다. 부부와 어린 자식들이 모두 포도청으로 압송돼 옥에 갇혔다. 그 엄한 조선사회에도 부모와 함께 어린 아이를 투옥시키는 일은 국법에도 없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천주교 신자들에겐 조그마한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이성례 마리아는 팔이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형벌을 이겨냈다. 하지만 그에겐 육체적 고통보다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더 마음이 아팠다. 한 살 배기 아들이 더러운 감옥 바닥에서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남편이 먼저 옥사하자, 이성례 마리아는 천주교를 따를 것인가, 아이들을 살릴 것인가 고민하다가 마침내 배교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고민이었으나, 결국 그 선택은 그로 하여금 성인으로 대우받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성례 마리아는 나머지 네 명의 자식과 함께 옥을 나간다. 하지만 맏아들이 신학생으로 중국에 유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다시 체포되었다. 한차례 배교했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네 아들이 감옥 창살을 붙들고 울부짖어도 다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그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둘째가 어머니의 굳은 마음을 확인하고 울부짖는 동생들을 달래서 발길을 돌렸다.

 

네 아이들은 옥에 찾아가면 자신들 때문에 어머니가 배교할 것을 걱정해 동냥을 해가며 살아간다. 어머니가 참수되기 하루 전 어린 형제들은 동냥한 쌀과 몇 푼의 돈을 가지고 희광이(사형 집행인)에게 찾아가 자신들의 어머니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단칼에 베어줄 것을 부탁한다. 감동한 희광이는 밤새 칼을 갈아 그 약속을 지켰다.

 

순교한 이성례 마리아는 한순간 배교한 사실 때문에 성인으로 시성되지 못했다. 당고개 성지의 순교자 10명중 배교하지 않은 9명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에 방한했을 때 시성(諡聖)되었다. 이때 성인으로 모셔진 9인은 이인덕(마리아), 홍병주(베드로), 홍영주(바오로), 이경이(아가타), 권진이(아가타), 최영이(바르바라), 이문우(요한), 손소벽(막달레나), 박종원(아우구스티노)이다.

 

모성을 초월해 순교한 이성례 마리아는 2014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간 중에 시복(諡福)되었다. 천주교에서 시성이란 죽은 이를 성인(聖人)으로 올리는 것이고, 시복이란 복자(福者)로 올리는 것이다. 교황청에서 성덕이 뛰어난 사람으로 선포한 이를 성인이라 한다.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추대된 사람을 복자라 하는데, 이는 하느님의 종이란 뜻이다. 이성례 마리아는 배교한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난 고뇌를 했을 것이다. 천주교 신자로서, 어머니로서. 하지만 성부와 성자, 성모를 모시는 천주교는 인간의 자그마한 번뇌의 실수도 인정하지 않았다.

 

 

 

 

 

 

천국의 문 왼쪽으로 칼의 모양에 성지명이 적혀있고 그뒤로 이해인 수녀님의 시비가 위치하고 있다. 묵주기도의 길이 계단을 따라 하늘정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편한세상 아파트를 나서면 바로 당고개 성지의 하늘정원이다.

 

 

 

 

 

 

 

 

 

 

하늘정원에는 누구나 출입을 할 수있도록 되어있다.

 

 

 

 

 

 

 

 

하늘정원에는 순교 현양탑을 중심으로 십자가의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