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성당은 서울의 중요한 순교 터이자 최대의 신앙 증언 터였던 좌우포도청과 의금부, 형조, 전옥서 등의 관아들이 있던 곳을 관할하기 때문에 2013년 2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하였다. 좌우포도청에서 103위 성인 가운데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재철 베드로를 포함한 22명의 성인이, 전옥서에서는 이호영 베드로와 김 바르바라 등 2명의 성인이 순교하였다. 포도청에서는 성 엥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가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 온갖 문초와 형벌을 받았고 124위 복자 가운데 윤유일 바오로, 지황 사바, 최인길 마티아를 포함한 5명의 복자가 순교하였다.
또한 포도청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마지막으로 신앙을 증언하고 밤을 보낸 곳이기도 하였다. 종로성당 내에는 좌우포도청에서 일어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인 사건과 의미를 일깨우고 선조들의 신앙모범을 따르기 위하여 순교자 현양관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현양관에서는 포도청에서 순교한 순교자들에게 관한 기록물들과 포도청에서 신앙을 증언하다가 다른 처형지에서 순교한 증거자들에 관한 정보를 전시하고, 좌우포도청, 형조 터, 의금부 터, 전옥서 터, 경기 감영 터의 순례 길을 안내하고 있다. 필자가 종로성당을 방문했을 때 수녀님이 순례 온 분들에게 순례 길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낭트 출생. 한국명 이복명(李福明). 1857년 사제가 되어 조선선교사로 파송명령을 받았다 랑드르, 요안노 등과 함께 1861년 조선 입국에 성공하여, 공주(公州)지방에서 전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866년 병인대박해(丙寅大迫害)로 주교 2명, 신부 5명이 처형당하자, 중국 치푸[芝罘]로 탈출, 조선 교회의 실정을 본부에 보고하고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즈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에 로즈 제독이 군함 3척을 이끌고 강화도를 포격함으로써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났다. 1869년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데 이어 주교로서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하였고, 다시 1876년 조선에 입국하였으나 붙잡혀 투옥되었다가, 중국정부의 주선으로 석방,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만주)으로 추방되었다. 뒤에 그가 편찬한 《한불자전(韓佛字典)》과 《한어문전》이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간행되었다(1880). 그 밖에 《조선어문법》 등의 저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