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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 대산성당(복자 구한선 다태오)성지

윤정규 2019. 10. 22. 03:34



대산 성지 무덤 경당 제대와 순교자의 유해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대산성당을 찾아갔다. 이 조그마한 시골에 이렇게 큰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대산성당은 22세 나이에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하신 복자 구한선 다태오(1844-1866)의 숨결과 넋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구한선 다태오는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미나리골)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그는 유학서적과 잡서를 많이 읽었는데, 천주교에 입교하기 전에 어떤 요술에 빠진 적도 있었다. 어느 날 구 다태오는 우연히 천주교 신자를 만나 교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를 받아들여 그에게 교리를 배운 다음, 성 다블뤼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약10년 동안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다가 리델 신부의 복사로 선택되어 거제도 전교에 동행한 적도 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된 뒤에, 구 다태오는 리델 신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지내던 중에 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그곳 관아로 압송되었다.

 

이윽고 관장 앞으로 끌려 나간 그는 갖가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또한 옥사에 갇혀서 주요 교리를 설명한 글을 적어 관장의 부인에게 전하였다. 구 다태오의 글을 읽은 그 부인은, 관장에게 그를 석방해 주라고 청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관장은 더욱 화가 나서 구 다태오를 옥에서 끌어내어 혹독하게 매질을 하라고 시켰다. 그럼에도 구 타대오는 아프다는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이에 관장이 화가 나서 제대로 매질을 하지 못한다.”며 형리를 꾸짖자, 형리들은 제대로 매질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더 때리면 그가 죽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관장이 이번에는 구 다태오를 향해 어찌하여 아프다.”는 소리를 한번 내지 않느냐?“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늙으신 어머니가 문 밖에 있을 터인데, 만일 신음 소리를 내면 어머니가 이를 듣고 기절하실 것이므로 신음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또 관장이 그러면 어찌하여 천주교를 신봉하느냐?“ 하고 묻자, 구 다태오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라고 가르치므로 천주교를 신봉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처럼 모진 형벌을 당한 뒤, 구 다태오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형벌로 7일 만에 죽었으니, 당시 그의 나이 22세였다. 순교한 뒤 그의 이마에는 “()자 모양의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구한선 다태오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하기리 세대마을에 안장하였다. 구한선의 묘는 1959년에야 처음으로 발견되어 교우들은 대산면 하기리 신대마을 신씨 묘역 안에 있던 묘소를 참배하기 시작하였다. 순교자의 묘소가 외교인 묘역 안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긴 교우들은 19769월 묘소를 평림리 가등산으로 이장하였다. 20148월 구한선이 시복된 뒤, 성지주변의 환경변화와 순례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201610월 복자 유해를 대산성당에 1층에 마련한 무덤 경당 제대에 모시고 1029일 교구장 배기현 주교 집전으로 복자 구한선 다태오 순교성지 기념재단 봉헌식을 거행했다. 대산성지는 본당 내 성당과 넓은 마당에 조성한 희망의 동산에 설치된 기념재단(유해 일부 안치) 및 안내센터(어머니 쉼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산 성지 무덤 경당 성모자 성화모습








대산 성지 희망의 동산 기념재단에는 구한선 다태오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