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
천혜의 피신처라 할 수 있는 곳 충북의 생각나는 관광지 중 하나인 배티 성지는 아름다운 성당과 걷기 좋은 산책로, 최양업 신부 박물관 등이 있는 곳이다. 진천에서 배티를 넘어가는 도로가 있고 좌우의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 그리고 둘을 연결하는 평택 제천 고속도로가 성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푸르른 숲 사이에 있는 배티 성지는 약간의 스릴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은 곳이다. 이처럼 각 지역과 쉽게 연결되면서 깊은 산골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1830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우촌이 형성돼 왔고 최양업 신부가 이 지역을 근거로 전국을 다니며 사목활동을 해왔다. 배티는 동네 어귀에 돌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梨峙)”라고 불렀고 이는 다시 순 우리말 “배티”라고 불리게 됐다.
배티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최양업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이 넓은 광장과 함께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성당 맞은편에는 아담한 배티 쉼터가 있고 성당 오른쪽으로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순교현양”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먼저 순례객을 맞는다. 모진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꺽지 않았던 선조들의 굳은 정신이 단단한 비석을 통해 느껴진다. 100m 정도 올라가면 왼쪽으로 1997년 봉헌된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이 있고 그곳에서 시작되는 오솔길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각 처가 모두 하나씩의 커다란 맷돌에 새겨져 있어 순교자들의 박해에 육중한 무게를 보여주는 듯하다.
배티 성지에는 여러 개의 성당이 있다. 정확히는 한 개의 성당 터와 두 개의 성당이다. 첫 번째는 최양업 신부 성당 터가 있고, 두 번째는 1997년 완공된 배티 성지 첫 번째 성당인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 성당이다. 세 번째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선종 150주년을 기념해 2012년 완공한 대성당이 있다. 최양업 신부가 머물던 사제관과 무명 순교자 묘역은 성지 입구로 나와 약 400m 정도 올라가면 길가 오른쪽에 “최양업 신부 성당 터”라고 쓴 입간판이 서있는데,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최양업 신부가 머물던 성당 겸 사제관이 말끔하게 복원되어 있다.
1년에 5000리에서 7000리까지 걸어 다니며 심할 때에는 한 달에 겨우 나흘밖에 못 잤다는 최양업 신부는 전국을 앞마당처럼 다니다가도 장마철에는 배티 사제관에 머물며 “천주가사(天主歌辭)”를 집필했고 기도서인 “성교공과(聖敎功課)”를 번역했다. 그러나 그가 기거하며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하던 두 칸짜리 옛 초가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1999년 최양업 신부가 머물렀던 성당 및 사제관 터를 확인한 후 부근에 있던 농가를 매입해 철거하고, 2001년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한 후 최양업 신부 동상을 세웠다. 여기서 잘 포장된 배티 고개 길을 따라 900m 언덕길을 올라가면 “14인 순교자 묘역 입구”라는 푯말이 서 있다. 이곳은 배티에 숨어 신앙생활을 하던 선조들이 포졸들에게 잡혀 안성으로 끌려가다 집단으로 순교한 것이다.
최 신부의 사목 순방은 고난 속에서 이루어졌다. 전국을 안마당 드나들 듯이 하면서 교우촌을 찾아 수십, 수 백리를 걸어야만 했고, 때로는 신자 한 두 집을 방문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골짜기를 올라가야만 했다. 또 어느 해에는 밀고자 때문에 한겨울에 신자 집에서 쫓겨나와 맨발로 산야를 헤맨 적도 있었다. 이러한 그의 삶은 곧 그리스도의 수난을 따르려한 순교적인 삶이였다. “원컨대 지극히 강력하신 저 십자가의 능력이 저에게 힘을 응결시켜 주시어, 제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배우려하지 않게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의 모든 희망은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있고,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죽고 함께 묻히는 것이 소망입니다."(최양업 신부의 1846-1847년 서한 중에서).
이처럼 그는 조국 땅을 밟은 뒤 11년 6개월 동안 온갖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사랑하는 신자들을 위해 쉬지 않고,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과로와 장티푸스로 1861년 6월 15일 경북 문경에서 선종하였으니, 만 40세의 한창 때였다. 그의 시신은 문경 부근에 가매장되었다가 그 해 10월말 신학교가 있던 제천 배론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라 부른다. 바로 그런 인물을 기리는 성지인 배티 성지의 성당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에는 그의 활동이 색색의 유리 조각으로 담겨있다. 가장 처음 만나는 성당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대성당에 들어가서 들어온 입구를 향해 돌아서면 파란 하늘 아래 우리 강산을 넘나들며 걸어 다녔다는 최양업 신부의 모습을 담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다.
배티 성지에서는 우리나라의 순교 성인들을 상징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두 손을 모은 성인들과 한복을 입고 쪽 비녀를 찬 모습 등 남녀를 가리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돼있고 그 모습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뛰어난 예술성까지 갖추고 있다. 배티 성지는 성당들 사이와 박물관 가는 길에 산책길이 조성돼있어 더욱 인상적이었고 가을날 드라이브하다 조용히 들러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유럽의 건축사와 역사를 대변하는 성당들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성당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 참 많은데 배티 성지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성지 주변으로 조성된 성지순례 길도 그렇고 멋진 조경과 나무들 사이로 만들어진 산책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 성당이다.
배티 성지 최양업 신부 성당터 최양업 신부 성당 겸 사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