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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성지

윤정규 2019. 11. 11. 23:41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금강가에 나바위가 있다. 배티 성지에서 출발해 저녁을 먹고 나바위 성지에 오후 730분경 도착했다. 여름이면 아직 훤한 시간이건만 117일의 시간은 캄캄한 밤이다. 자동차를 넓은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나바위 성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우암 송시열은 이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해서 화산(華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산의 줄기가 끝나는 곳에 광장같이 너른 바위가 펼쳐지는데, 이름 하여 나바위. 오늘날 화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 화산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나바위 성당은 너른 바위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나바위성지는 한국인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배를 이용해 국내에 처음 도착한 곳이다.

 

나바위는 금강의 선착장이었다. 18451012일 밤, 한 청년이 배에서 내려 이곳에 발을 내딛었다.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었다. 그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작은 배 한 척에 몸을 실어 이곳에 신부로서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때 그의 발밑으로 금강의 거친 탁류가 넘실거리며 흘렀다. 마치 닥쳐올 고난을 예고하듯. 그가 나바위에 도착하기까지 여정 또한 파란만장했다. 183612월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고국을 떠나 다음해 6월 마카오에 도착한 그는 184412월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 1월 천신만고 끝에 홀몸으로 의주 변문의 수구문을 통해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3개월 뒤 다시 11명의 조선인 선원들과 함께 라파엘호라는 작은 목선을 타고 떠나 64일 상하이에 도착, 812일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는다. 그리고 그 길로 함께 간 조선인 선원들과 두 외국인 신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귀국길에 오른 것이다. 귀국한 지 1년 만에 관헌에게 붙잡혀 순교함으로써 고국에서 그의 사목활동은 너무나도 짧은 것이었지만, 그가 남긴 족적만큼은 한국천주교사에서 가장 찬란한 자취였다. 당시 고국 땅을 밟은 김 신부의 감회가 사뭇 어떠했을 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1784년 한국교회가 세워진 후 첫 신부로 맞았던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6년만인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했고, 그 뒤 33년간 목자 없는 양 떼였고 다시 세 명의 프랑스 신부들을 맞이했으나 그나마 1839년 기해박해 때 모두 잃었다. 그리고 6년 동안 또 다시 한국 교회는 한분의 사제도 없는 암흑기를 지내야 했다. 목자를 기다리는 한국교회의 신자들은 세분 성직자의 입국은 참으로 감격적인 사건이었으며 김대건 신부 자신도 그토록 목마르게 그리던 고국에서 첫 방인 사제로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비록 고국에서 사목활동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총명함과 굳건한 신앙은 한국교회의 가장 든든한 초석이 되었다.

 

나바위 성당은 1897년 이곳에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가 동학혁명 때 망해버린 김여산의 집을 1000냥에 사들여 개조한 후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성당 건물은 1906년에 완공되었다. 1916년에는 목조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의 종각을 증축했다. 한옥건물에 기와를 얹은 성당은 특이한 회랑 덕분에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어 지방문화재(사적 제318)로 지정되었다. 올해로 113주년을 맞는 나바위 성당은 일제강점기, 6·25를 거치면서 민족과 애환을 같이했다.

 

1907년 계명학교를 세워 1947년 폐교될 때까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을 통한 구국에 앞장섰고, 신사참배에 저항하던 사제와 신자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6·25 당시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성당을 지킨 사제 덕분에 단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미사가 봉헌된 기록도 갖고 있다. 나바위 성당은 1955년 성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세우고, 1991년에는 피정의 집을 건립했다. 3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대건교육관 외에도 소규모 피정자를 위한 피정의 집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피정의 집 앞에 있는 운동장은 2000평 규모로 야영장으로도 활용된다.

 

성당 뒤편에는 야외제대와 평화의 모후 성모동산이 꾸며져 있고, 화산으로 오르는 오른쪽 입구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이 서 있고, 성모동산 왼쪽으로 정상까지 이르는 길에서 야외 십자가의 길 14처와 2대 본당 신부였던 소세(saucet) 신부의 묘가 있다. 성당 내부에는 1995년 전주교구청에서 옮겨온 성 김대건 신부의 성해(목뼈) 일부가 모셔져 있다. 제대와 그 위의 예수성심상, 촛대, 감실, 세례대 등은 중국 남경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해서 성당 건축 당시 들여와 조립 또는 설치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한옥과 서양건축의 절묘한 조화

 

 

 

 

 

 

 

 

 

 

 

 

 

 

 

 

 

2대 본당 신부였던 소세(saucet) 신부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