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수원 성당 가는 길 국도변 물가에는 겨우내 쌓인 갈색 낙엽이 여전하다. 하지만 나뭇가지는 새순이 올라 마치 아가의 뽀송뽀송한 피부처럼 연두색을 수줍게 내보인다. 그리고 연못에 담기는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예쁜 봄의 색들이 저마다 매력을 뽐내며 어우러지니 이제 코로나19의 오랜 억압에서 벗어난 듯하다. 두 팔을 활짝 펴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켠다. 풍수원 성당은 두 가지 색깔이 어울려 빚어놓은 풍경이다. 자주색의 벽돌과 잿빛의 돌이 어울려 소박하고 검소한 성당의 풍경을 완성했다. 하지만 이 소박한 성당이 유독 화려해지는 때가 있으니, 바로 봄이다. 노랗고 빨간 봄빛을 만나 어느 때 보다 화사해졌다.
7년 전 구역식구들과 같이 와본 오색찬란한 풍수원 성당. 조용하고 소박하지만 사계절 다른 매력으로 찾는 이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곳, 드라마 촬영지로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그 곳을 필자는 다시 찾았다. 강원도 횡성군 서현면 국도변의 조용한 마을 유현 2리. 유현문화관광지로도 알려진 이곳에는 자그마한 성당 하나가 있다. 서울에서도 멀지 않아 가족, 연인과 함께 가볍게 나들이를 가기에도 좋다. 바쁘고 지치는 연휴에 조용한 산책과 명상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다면 이곳 풍수원 성당이 최고다. 풍수원 마을은 40여 명의 신자들이 신앙촌을 형성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1800년대 초 신유박해를 피해 용인에서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다니다 이곳에서 마을을 이뤘다.
종교를 믿는 것이 목숨을 빼앗을 이유가 되던 시대였다. 신유박해(1801년)에 이어 병인박해(1866년), 신미박해(1871년)가 계속됐고, 신앙을 위해 집과 밭을 버린 이들은 이 산골로 모여들었다. 1888년에 르메르 신부가 파견되면서 본격적으로 성당 터전을 닦았고, 1907년 정규하(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준공 봉헌하면서 지금의 성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풍수원 성당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다. 또,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자 국내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기도 하다. 빨간 벽돌을 주로 사용해 고딕풍 양식으로 지었다. 성당 건립 때 신자들이 벽돌을 직접 구워 쌓아 올렸다고 한다. 나무 등도 현지에서 직접 조달해 지었다 하니, 그 정성이 지극하다.
성당 주변을 둘러싼 나지막한 산세와 성당 뒤 산책로의 풍경이 그림 같다. 진입로에서 보이는 성당의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사계절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이곳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주차장에서 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아기 손바닥만 한 돌들이 모여 부채꼴을 그리며 바닥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 풍수원 성당도 코로나 19를 비켜가지 못했다. 적막이 감도는 언덕을 올라 성당을 바라보니 예수성심상 주위에 둥근형태의 꽃 모양이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불두화라 하였다는 불두화와 마가렛 꽃이 고즈넉하게 피어 있는 모습이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 같았다.
본당 앞에 서면 세 개의 길이 나타난다. 좌측은 십자가의 길, 중앙은 유물전시관, 우측은 사제관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항상 성지를 방문하면 본당을 먼저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십자가의 길부터 오른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오르신 골고다 언덕을 형상화한 이 곳 에는 14개의 비석이 있다. 판화가인 이철수님의 그림으로 세워졌다. 경사가 완만하고 거리 또한 길지 않아 산책하듯이 십자기가의 길을 하면서 걷는다. 중간쯤 세워진 비석 앞 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갑자기 마음이 경건해진다. 고난의 상징인 이 길을 사진 찍으며 편하게 온 모습에 죄책감이 느껴져 잠시 셔터 소리를 멈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떠난 후 그 비석 앞으로 간다. ‘예수 어머니를 만나시다’란 글귀가 보인다. 두 손 모아 고개를 숙이던 이유를 조금은 이해 할 것 같다. 비석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동화 스러운 모습이다. 종교가 주는 무거움이 느껴지지 않아 누구든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그림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예수상이 제일 먼저 눈에 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상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니 성당의 역사가 생각난다. 국내 최고 천주교 성지 순례지 중 하나인 풍수원 성당은 도심의 성당과 달리 명상과 휴양 시설이 조성돼있어, 휴식과 치유를 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안쪽 산허리에 위치한 명상의 공간을 비롯해 유현문화관광지 전체를 품어주는 산책로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 느낌도 새롭다. 봄, 여름, 가을 신록이 푸르러지면 꼭 짬을 내어 거닐고 싶어지는 길이다.
횡성군에서 주도적으로 조성한 유현문화관광지 조성 사업은 풍수원을 중심으로 2003년부터 시작됐다. 2013년에 유물전시관과 강론광장, 진입로 등 기반 조성 중심의 1단계 사업이 이뤄졌다. 2014년 봄부터는 신자들의 생계유지 수단이었던 가마터 및 원터 복원과 휴게실, 제대 등 공사가 마무리됐다. 유현문화관광지는 풍수원 성당, 강론광장, 가마터, 유물전시관 등으로 구성돼있다. 강론광장은 새로 지어진 제대 뒤쪽으로 살짝 경사가 있는 언덕에 있다. 광장 옆의 가마터는 신자들이 도기를 제작하던 가마를 복원해 놓은 것이다. 가마터 아래의 유물 전시관은 천주교 관련 자료를 비롯해 일반적인 민속박물관보다 많은 자료들이 전시돼있어 자녀 교육에도 좋다. 유물전시관은 단층으로 지어져 주변 풍경에 모나지 않게 어울리면서 간결한 느낌을 준다. 유물전시관 옥상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나란히 놓여있어 예스러운 정취도 자아낸다. 특히 이곳에서는 성당을 포함한 풍수원 전체의 조망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꼭 올라가 봐야 할 곳이다
성당은 도심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고 아담하지만 견고하다. 그 옛날 신자들의 정성이 벽돌 하나하나에 쌓여 꿋꿋하다. 본당의 내부는 이색적이다. 2013년 필자가 구역 식구들과 방문했을 때에는 의자가 없었다. 일반적인 성당의 내부는 긴 의자가 2열로 길게 배치되지만 이 곳 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드리게 되어 있었다. 그때는 ‘좀 더 자신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절대신에게 다가가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박해와 핍박을 받은 신자들이 더 많이 성당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그렇지만 필자가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여느 성당처럼 의자가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한 것은 아닐까?
마루만큼 기둥도 특이해 눈길을 끈다. 모두 벽돌 문양으로 되어 있다. 외벽과의 조화를 신경 쓴 부분이다. 외벽은 신자들이 빨간 벽돌을 직접 구워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당의 역사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다. 그 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한 문양이라고 믿는다. 풍수원 성당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근처를 지나는 길이라면 잠시 짬을 내서 들러 볼만한 곳이다. 천주교 신자라면 의미 있는 방문이겠지만, 신자가 아니어도 그 아름다움에 반할지도 모른다. 길도 멀리 돌아가지는 않으니 바쁜 목적이 아니라면 동쪽으로 가는 길이든, 서쪽으로 가는 길이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풍수원 성당을 가는 초입의 좌측에는 주차장과 함께 폐교를 보수해 순례자 쉼터로 이용되는 건물이 있다. 주차장 맞은편에는 무인(無人)판매를 하는 농산물 매장도 있어 주부들의 발길을 잡는다. 성당은 횡성과 양평을 이어주는 6번 국도의 중간 부분에 위치해있다. 무심코 지나쳐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안쪽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표지판이 있어 주의 깊게 본다면 찾기는 어렵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