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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욕(三浴)의 고장' 울진기행

윤정규 2020. 6. 28. 01:46

해안스카이레일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경북 최북단 동해안에 자리한 울진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가장 떨어지는 곳 중 하나다.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행을 하려면 운전도 오래해야 하고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한다. 워낙 외진 곳에 자리하고 지형도 험준하다 보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지명 그대로 보배() 같은 비경이 곳곳에 남아 있다. 울진은 삼림욕, 해수욕, 온천욕을 사계절 즐길 수 있는 '삼욕(三浴)의 고장'이라고도 불린다.

 

필자가 경북 청송에서 영덕을 경유해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처음 도착한 곳이 울진군 월송정 앞에 있는 카페'노바'였다. 아름다운 월송정의 소나무숲을 바라보면서 음미하는 암갈색의 다소 쓴 맛을 내는듯한 커피 한 잔이 주는 행복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지경이다. 문득 인간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라고 한 토스토예프스키의 말이 떠올랐다. 코로나19를 피해 마스크를 벗어 버리고 공기 좋고 풍광이 좋은 나만의 공간에서 즐기니 이 보다 더 한 행복이 또 있으랴.

 

작은 행복감을 느끼며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풍광을 보며 추억을 쌓는 것이 현실적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기보다 각기 다른 풍광을 가진 바닷가를 따라 돌며 추억의 사진을 남기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을 높여줄 것이다. 힘들면 여행의 즐거움은 아무래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바다 풍광이 비슷비슷할 것 같지만, 경북 울진의 바다는 그림 같은 다양한 비경의 연속이다. 싫증나지 않은 해변을 품은 곳이다. 월송정은 바다 풍광과 함께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신라의 영랑, 술랑, 남속, 안양이라는 네 화랑이 울창한 소나무숲에서 달을 즐겼다 해서 월송정이라고도 하고, 월국에서 송묘를 가져다 심었다 하여 월송이라고도 한다.

왕피천 케이블카

서울에서 강릉을 거쳐 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울진의 바다는 죽변항이다. 죽변은 대나무가 해변에 많이 자생해 붙여진 지명이다. 내비게이션에 죽변등대를 설정하고 출발하면 된다. 등대 뒤편으로 대나무가 우거진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절벽 위 예쁜 집과 교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2004년 방영된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이다. 예쁜 집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나 들어가서 바다 풍광을 볼 수 있다. 특히 집 아래 펼쳐진 백사장은 하트 모양처럼 생겨 하트 해변으로 불린다. 이곳에 울진군이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망양정( 望洋亭 )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고궁)와 후정리(후정해수욕장 입구)를 잇는 '죽변해안스카이레일''울진 왕피천 케이블카'7월 중 문을 열면 울진은 명실상부한 동해안 해양관광문화 중심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울진군은 '울진 왕피천 케이블카'를 오는 71일 가동한다. 당초 '울진 왕피천 케이블카'의 개장일은 지난 518일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개장을 늦췄다. 자동차로 이번엔 망양정(望洋亭)으로 향한다. 근남면 산포리 망양해수욕장 근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정자는 망양정이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명소지만, 지금 위치는 후대에 옮겨진 것이다. 그래도 주위 송림에 둘러싸인 언덕 아래로 백사장이 있고 왕피천(王避川)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멀리 망망대해가 한눈에 조망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곳보다는 원래 망양정이 있던 곳에서 바다 풍경을 조망하는 것이 더 좋다. 현 망양정에서 20정도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달리다 보면 망양정 옛터란 표지판이 나온다현종산 일대로 기성면 망양리 망양해변 인근이다. 애초 망양리 앞 모래밭 가장자리에 있던 망양정은 정자가 오래돼 허물어지자 조선 세종 때 마을의 남쪽 현종산 기슭, 지금의 옛터 자리에 옮겨졌다. 숙종은 강원도관찰사에게 관동팔경을 그림으로 그려오라고 한 뒤 그 중 망양정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면서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고 쓴 친필 편액을 내렸다고 한다현 위치에 있는 망양정 산포리 해변의 바다를 거닐어보자.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며 사금파리처럼 흩어지는 모습에 한동안 자리를 뜨기 힘들다.

산포리펜션

주변을 둘러보다 아름다운 펜션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산포리펜션이다.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에게 관람을 요청하니 흔쾌히 수락했다. 지상 2, 전체면적 350평 규모인 펜션은 내부전체가 인체에 유익한 친환경 목재와 친환경 마감재를 사용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자세히 보면 고도로 전문화한 인테리어 코디네이터의 설계와 손길로 꾸며진 매우 럭셔리한 복층형 펜션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스파 시설과 각 호실의 테라스에 각각 독립된 형태로 설치된 바비큐시설과 수입 천연 히노끼목재와 편백나무를 섞어 꾸민 욕실은 보기만해도 자연산 피톤치드가 나오는 듯 했다. 특히 모든 객실에서 동해 일출을 조망할 수 있는 바다와 푸르른 금강송이 산수화처럼 펼쳐진 비경을 감상할 수 있고, 개별 테라스에서는 나만의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촛대바위

산포리 펜션에서 남쪽 매화면 오산항구 방향으로 가는 길에 촛대바위가 있다. 길을 가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천천히 바다를 감상하며 가는 것이 좋다. 도로에 붙어있는 촛대바위는 바위 자체가 촛대처럼 곧게 서 있고, 바위 위에 해송이 촛불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촛대바위를 중심으로 길이 ‘S’자로 꺾여 있는데, 인간의 흔적인 도로와 자연의 미(美) 촛대바위가 잘 어우러져 있다.

불영사

사계절 계곡의 멋스러운 풍광

 

여성 승려인 비구니의 도량인 불영사(佛影寺)는 울진읍에서 서쪽으로 약 20가량 떨어진 천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이름 그대로 부처의 그림자를 모신 절이다. 불영사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 20분 정도 걸으면 다리가 나온다. 양쪽으로 계곡이 이어지는데 신비롭다. 다리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면 연못을 가운데에 두고 전각들이 한적하게 자리 잡은 불영사가 홀연히 나타난다. 절 가운데 연못이 있는 게 다른 절과 다른 점이다.

 

불영사라는 이름도 이 연못과 관련돼 있다. 연못을 기준으로 왼편 산자락에 있는 돌이 연못에 비친 모습이 부처 형상을 닮았다고 해 불영사란 이름이 붙었다. 불영사는 불귀사, 구룡사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부처 형상이 비치는 연못에 아홉 마리 용이 살았는데, 의상대사가 이를 몰아낸 뒤 절을 지었다하여 처음엔 구룡사로 불렸고, 절을 세운 의상대사가 중국에 수행을 다녀온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부처가 돌아온 절이라 해 불귀사로도 불렸다. 사찰에서 눈길이 가는 곳은 대웅전 아래에 있는 거북이상이다.

 

대웅전 정면 계단 양쪽으로 한 쌍의 돌거북이가 고개를 쑥 내밀고 있다 화재를 피하기 위한 마음에서 물에 사는 거북이에게 대웅전을 짊어지게 했는데도 불영사는 수차례 불에 타 중건을 거듭했다. 효험이 신통치 않은 것 같기도 한데, 1000여년의 세월을, 이어져 온 것을 보면 효험이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대웅전 안에 들어서서 대들보를 보면 작은 거북이 몸통을 볼 수 있다. 외부의 돌거북이가 목밖에 없는데 나머지 몸통은 신기하게 대들보에 조각해 놓았다.

 

불영사를 둘러본 뒤 울진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구불구불 이어진 불영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이다. 아직 6월이라 계곡을 직접 들어가기는 힘들다. 하지만 가는 길에 있는 전망대 인근에 차를 세워놓고 계곡 풍경을 감상해야 한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없다. 혹자는 기암절벽 등이 이루는 풍광을 두고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다른 계곡과 다른 깊이와 기암절벽을 지니고 있는 신비한 계곡이다.

트레킹과 온천이 가능한 응봉산과 덕구온천

 

울진 북쪽에 있는 덕구온천의 수질은 중탄산나트륨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는 알칼리성 온천으로 신경통, 류마티스, 근육통, 피부질환들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구온천 뒤로는 응봉산이 자라잡고 있다. 온천과 트레킹이 동시에 가능한 곳이다. 해발 1000m의 응봉산 정상 및 산맥과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덕구지역이 한데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수질과 계곡이 안고 있는 형제폭포, 옥류대, 선녀암 등이 천혜의 조화를 이룬다. 온천욕과 함께 계곡을 산책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접하는 자연친화적인 가족 나들이와 휴양지로도 손색이 없다.

 

물병 하나만 들고 가벼운 기분으로 온천에서 4km 떨어진 덕구계곡 원탕까지 산행을 한다. 굵은 쇠파이프를 연결해 온천수를 공급 받기에 파이프를 따라가면 원탕에 도달한다. 섭씨 43도의 온천 원수탕이다. 이곳 온천수는 파이프라인에 실려 덕구온천으로 들어간다. 트레킹 코스에서 내내 보이던 수로관이 바로 온천수를 운반하는 관이다. 덕구온천은 인위적으로 땅을 파서 모터로 뽑아내지 않은 자연용출온천이다. 하루에 약 2000t의 온천수가 솟아오른다. 덕구온천이 유명한 이유가 짐작이 간다. 계곡 중간지점에서 선녀탕과 용소폭포를 만날 수 있다. 용소폭포는 용이 지나간 듯한 꿈틀거림의 흔적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원탕,족탕,분수대

덕구계곡에는 초입에 있는 제1교량인 금문교를 시작으로 서강대교 노르망디교, 하버교, 크네이크교, 모토웨이교, 알라밀로교, 취향교, 청운교, 트리니티교 등 특색 있는 다리들이 나온다. 세계 유명 교량을 모방해 만든 12개 다리는 트레킹의 재미를 배가한다. 필자도 7개월 전 친구들과 콘도에서 하룻밤을 자고 오전 일찍 한 시간 동안 트레킹 맛을 봤다. 숨은 가빴지만 코끝으로 전해진 계곡의 신선한 공기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충분했다.

 

울진 후포항에서는 11월에서 다음 해 5월말까지 매일 아침 큼직한 대게들이 위판장 바닥에 깔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게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배가 위로 향하게 뒤집는 엄청난 속도의 손놀림을 보다 보면 어느새 대게는 줄 맞춰 정렬돼 있다. 그냥 정렬해 놓은 것이 아니라 다리가 두 개 이상 잘린 비품은 한쪽 구석으로 빼놓고, 크기별로도 분류돼 있다. 이어 경매사와 중매인들이 몰려들어 구경꾼은 봐도 알 수 없는 의미의 숫자를 나무판에 적어내 입찰에 나선다. 몇 번 오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순식간에 낙찰자가 정해지고, 바닥에 깔렸던 대게는 손수레에 실려 자취를 감춘다. 그 빈자리는 다른 대게들이 채운다.

대게 경매는 눈요기고 울진 여행의 진짜 목적은 먹거리. 대게 먹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대게를 알차게 먹으려면 요령이 필요하다. 다리를 먹을 때 관절을 부러뜨려선 안 된다. 대게 다리 중간 부분을 부러뜨려야 힘줄에 붙은 탱탱한 게살이 딸려나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몸통 내장에 비벼 먹는 볶음밥과 대게를 넣고 끓인 라면도 일품이다. 대게는 배 부분이 하얀 대게와 온몸이 붉은 홍게로 불리는 붉은 대게로 나뉜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다. 붉은 대게가 하얀 대게에 비해서 싸지만, 어떤 여행객에게는 더 입에 맞을 수도 있다. 울진에서는 고소하고 달콤한 대게의 참맛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가 매년 3월 초에 나흘간 후포항 왕돌초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인근 식당에서 저렴하게 대게 맛을 볼 수 있는 기회다.

망양정에서 왕피천을 끼고 3정도 가면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는 성류굴이 있다. 성류굴은 천연기념물 제155. 길이 800m. 일명 선유굴(仙留窟장천굴(掌天窟)이라 한다. 성류굴은 임진왜란 때 부처를 이 굴에 피난, 보호하였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굴 앞을 흐르는 맑은 물이 동해로 흘러드는 왕피천(王避川)과 만난다. 굴 입구는 앞이 확 터져 있고 동굴의 내부 온도는 약 15~17로서 연중 거의 변화가 없고, 습도는 늘 축축한 90~95%를 유지하며, 동굴내의 수온은 15~16.5정도이다.

글·사진=윤정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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