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하루 확진자 수가 10명 밑으로 떨어지면서 거의 끝나는 듯했던 코로나19는 다시 수도권에서 확산하며 불안감을 키운다. 이제는 마스크가 신체의 일부가 된 코로나 시대의 삶을 살고 있다. 모임은 꿈도 꾸기 어렵고 ‘방콕’의 우울증을 털어버리려 여행을 계획한다.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소중한 요즘, 행복했던 순간이 지나고서야 그것이 결코 노력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왠지 다신 오지 않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밀려온다. 울적함이 깊어지기 전에 충남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나문재 카페와 서해의 하와이로 불리는 가의도 여행을 떠나 본다.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7월 17일, 태안은 쪽빛 바다가 펼쳐지고, 푸른 녹음으로 가득했다. 마치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아름다웠고, 나비와 새들이 노래로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나문재는 쇠섬으로 불리는 곳으로 펜션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섬 아닌 섬 쇠섬으로 가는 길, 나문재 약2km 전방에서부터 양쪽 황색선만 그어진 좁은 길이다. 입구에 들어가는 길목마다 나문재 펜션,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팻말이 세워져있다.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 좁은 도로를 천천히 찾아간 나문재 카페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입구에서부터 가득한 수국들 그리고 넓은 정원에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섬안의 섬에 있는 나문재 카페,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섬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곳. 코 끝을 간지럽히는 바다향기와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세상에서 아름다운 풍경들, 아름다운 나문재에서 또 다른 행복을 전해드린다. 여행을 하면서 멋진 카페를 발견하는 것은 감동이고 희열이다. 2003년에 문을 열었다는 카페 내부는 화원처럼 꾸며져 있고 밖의 전망이 아름다워서 계속 자리에 앉아 있고 싶다. 차를 '테이크 아웃'하여 섬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며 자연을 감상하면 식재된 꽃들은 물론이고 바닷가에 서 있는 노란 꽃이 장관이며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 모감주나무와 팽나무 등 여러 그루의 거목을 볼 수 있다.
정원에는 장미와 디기탈리스, 개양귀비, 솔체꽃 등이 한창이지만 소나무숲에는 봉우리진 백합과 수국이 가득해서 장관을 이룬다. 섬 주위를 둘러보다보면 이 넓은 곳을 어쩌면 이렇게 잘 가꾸어 놓았을까!!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섬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자연과 함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도 있고 흔들흔들 그네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서해바다의 시원한 풍경을 보며 바다를 향한 동경을 꿈꾸기도 한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며 앞만 보며 달려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나문재 카페는 그야말로 여유의 철학을 가르쳐주는 좋은 스승이 될 것이다.
트레킹의 섬 가의도
오후5시 출발하는 가의도행 배를 타려고 안흥항에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자동차는 싣지 못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하룻밤을 안흥항 주차장에서 신세를 지고 이튿날 18일 오전8시30분에 여객선에 올랐다. 출발하는 여객선을 따라 괭이갈매기 무리들이 따라온다. 누군가 던져주는 ‘새우깡’ 맛에 취해 선상을 맴도는 괭이갈매기 무리 등을 보고 있으면 여행은 역시 ’이런 맛’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태안반도 끝자락에 꼭꼭 숨겨두고 싶은 섬, 바로 '서해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섬, 가의도다.
조그마한 섬이지만, 보물 같은 풍경을 잔뜩 숨겨둔 자연의 보고다. 동백나무와 떡갈나무 등 원시 천연림이 가득하고 해변을 따라 펼쳐진 기암절벽의 풍경이 한편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달리던 배가 잠시 속도를 늦춘 바다에는 사자 한 마리 웅크리고 앉아있다. 고개를 뒤로 돌리고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 영락없는 사자다. 꼬리 쪽에는 작은 바위 여러 개가 줄을 잇고 있는데 마치 새끼 사자 같다. 배를 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진귀한 사자바위 풍경. 가의도 가는 길에는 목개도, 정족도, 독립문바위, 거북바위 등 자연이 바다를 캔버스 삶아 거대한 예술공간으로 꾸며놓은 모습을 감상하게 된다
사자바위를 뒤로하고 서쪽으로 더 나아가면 안흥항을 출발한 지 30분 만에 가의도에 닿는다. 아름다운 몽돌해변을 끼고 기암절벽이 바다를 향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은 잊지 못할 장관이다. 섬은 동백나무와 떡갈나무 등 원시림이 가득하고 파랗고 빨간 지붕을 얹은 마을이 포근한 숲에 안겨 동화 같은 전원마을을 완성했다. 가의도 북항 선착장에 도착하니 “가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특산물인 육쪽 마늘이 그려진 벽화가 탑승객들을 반긴다. 섬에는 북항과 건너편 남항, 총 두 개의 항구가 있다. 기상 상황이 나빠지거나 바람이 거세지면 나가는 배가 남항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몽돌이 파도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섬 안으로 발을 옮겨본다.
가의도는 옛날 가의라는 중국 사람이 이 섬으로 피신해 살았기 때문에 가의도라고 불렀다는 설과 이 섬이 신진도에서 볼 때 서쪽의 가장자리에 있어 가의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필자는 민박집을 운영하는 주모씨를 만났다. 그분에게 가의도의 유래를 들어봤다. 주모씨의 예기는 먼 옛날 중국에서 가의라는 사람과 가의를 수행하는 주씨 성을 가진 사람과 같이 가의도에 와서 살았고 가의의 후손들은 모두 육지로 나갔다고 한다. 실제로 태안엔 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태안 양잠리엔 가씨 사당도 있다. 공교롭게도 현직 가세로 태안군수 역시 성이 가씨다.
마을 입구 길은 약간의 경사로인데 옆으로는 대부분 마늘밭이다. '육쪽마늘의 원산지 가의도'라고 쓰여 있다. 이 섬의 마늘은 맛과 향이 좋은 육쪽마늘로 품종이 우수하다. 가의도길을 따라 올라가면 '굿두말' 마을이 나온다. 필자를 사람보다 처음 맞아준 것은 큰 암은행나무였다. 1996년 5월 태안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높이 40m, 둘레 7m의 이 나무의 수령은 450년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은행나무는 암·수나무 간에 수정이 돼야 은행열매를 맺는데 암은행나무는 나이가 450살임에도 평생 동정을 지켜 온 불쌍한 처녀나무다.
작은 규모의 섬답게 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민들은 특산품인 육쪽마늘을 재배하며 삶을 이어오고 있다. 4월에서 6월 중순까지 오면 초록빛을 한가득 품은 마을 전경을 볼 수 있다. 섬의 크기가 크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밭이 4월에서 6월 사이에는 푸릇한 마늘대로 가득 찬 모습이 장관이란다. 간격이 떨어져 있는 집과 집 사이를 마늘밭이 채운다. 조금 더 올라 지대가 높은 곳에 올라서면 섬 전체에 가득한 마늘밭을 한눈에 볼 수도 있다. 마을길을 따라 제법 가파른 언덕에 오르면 발아래 굿두말 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굿두말 바로 옆 마을인 '큰말'은 동쪽으로 이어진다. 큰말 위를 지나가면 마을 아래 큰말장벌해수욕장이 보인다. 해안가의 암벽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신장벌을 향해 동쪽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해안선이 계속 펼쳐진다. 작고 아담한 신장벌 해수욕장 앞 해변에는 사자바위, 독립문바위 코끼리바위와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300m쯤 되는 신장벌 해변의 고운 모래길은 파도 소리 들으며 천천히 걷기에 좋다.
암은행나무를 지나면 다시 한번 갈림길이 나온다 그중 흙길을 택하면 전망대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갈림길서부터 정상까지 600m 정도 되는 짧은 길이지만 무척 가파르고 미끄러우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심해가며 계속 산을 오른다. 숨이 차올라도 나무들이 자연적으로 만든 나무 터널부터 곳곳에 보이는 들꽃이며 이름 모를 풀들이 등산에 재미를 더한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가 선물처럼 나타난다. 언덕 하나를 넘으면 내리막과 함께 남항과 솔섬이 보인다. 방파제 너머 귀여운 솔섬도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방파제 앞쪽으로 난 둑 위로 올라서자 그제야 솔섬이 눈에 들어온다. 단단해 보이는 돌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아름답다.
글·사진=윤정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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