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글로벌 공룡 IT기업들의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2012년부터 추진한 '조세회피방지(BEPS)프로젝트‘가 10년 만에 쾌거를 일궈냈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지난 6월5일 런던회의에서 디지털세(일명 구글세)의 글로벌 최저 법인세 적용률 확정에 합의했다. 이로써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막대한 돈을 벌어가면서 매출발생국 나라에 세금 한 푼 안 내는 일은 이제는 불가능하게 됐다.
◆‘BEPS 프로젝트’ 긴 여정 끝에 쾌거
그동안 구글을 비롯해서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세법이나 조세조약의 사각지대인 역외에 본사를 두며 이른바 ‘조세회피’를 일삼아 왔다.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홍콩 등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몰려가는 이유다. 그렇게 빼돌린 세금이 해마다 수천억달러에 이른다. 전 세계 법인세수의 10%에 달한다는 주장도 제기 되고 있다.
이번 런던의 G7회의에서의 합의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최저 15%로 하고 무엇보다 매출발생 국가에서 해당기업이 세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G7합의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다국적 기업들의 세금덤핑경쟁을 막고 빅테크기업의 조세회피를 차단하는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이번 합의는 큰 틀의 합의일 뿐 완전체는 아니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이익률 10%를 초과하는 대기업 이익 중 최소 20%’라고 한정된 것이지만 매출 발생국가로의 납세는 그동안 단물만 빨아가는 다국적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과세체증을 다소나마 풀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내 다국적 법인 중 상당수는 조세회피처로 매출이나 이익을 이전해 한국엔 세금을 쥐꼬리만큼만 내왔다. 이런 기업 중에는 매출 1조원을 넘는 곳이 부지기수다. 자료조차 본사에 있다며 공개를 거부한다. 국회에서 불러도 마찬가지 대답뿐이다. 앞으로는 이런 게 불가능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글로벌 공룡 IT기업에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라는 조세 원칙은 유명무실했다. 이들 글로벌 IT 기업은 엄청난 데이터를 다루고 이를 이용해 상당한 수익을 창출하지만 세금 내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구글코리아 한국매출 매년 5조 추정
2020년 4월 14일 구글코리아는 한국에서 올린 영업 실적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것도 자의적인 공개가 아니라 회계감사법이 개정되어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고 감사보고서 공시가 의무화 됐기 때문이다.
구글코리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구글코리아의 매출은 2201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155억원에 불과했다. 같은 해 네이버의 매출은 5조 3041억원, 카카오의 매출은 4조 1568억원이었다. 구글코리아의 매출액이 너무 적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구글 매출에 잡힌 것 대부분이 광고 수익이었고, 구글의 앱마켓인 플레이스토어에서 올린 매출은 쏙 빠져있었다. 한해 구글플이스토어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은 5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많은 매출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로 싱가포르에 위치한 구글 아시아 퍼시픽으로 매출이 잡힌다. 구글이 한국에서 발생한 매출을 굳이 그렇게 한 이유는 뭘까? 싱가포르 법인세율이 우리보다 낮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인세율은 24%인데 반해 싱가포르의 법인세율은 17%이다. 우리나라 법인세율이 너무 높아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를 낳고 있는 결과로 귀결되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세율이 낮은 곳으로 본사를 둘 수밖에 없다. 현재 국제조세조약은 이 중과세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공장과 사업장이 크게 필요치 않는 국가 간 경계가 모호한 디지털 서비스를 영위하는 IT기업의 경우 본사를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싱가포르, 홍콩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특히 아일랜드는 글로벌 기업들이 선호하는 나라가 됐다. 아일랜드는 외자유치를 위해 법인세율을 10% 초반으로 낮추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OECD 평균 법인세율인 23.5%보다 훨씬 낮은 10%대다. 아일랜드에 특허를 출원하면 법인세를 더 낮춰주고 있으며, 관세도 낮은 편이다. OECD는 한해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로 각국 정부가 입게 되는 세수 손실을 약 27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과 전망
디지털세의 경우, 우리나라가 미국 등의 글로벌IT기업의 매출에 대해 과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득도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규모가 커질 경우 해외매출에 대해서는 오히려 디지털세를 납부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유불리를 정밀하게 분석해 봐야 할 상황이다.
앞으로 세제당국은 디지털세의 구체적인 적용기준을 협상해 나가면서 납세혐력비용등 우리나라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계속 분석할 필요가 있고, 기업도 국제적인 과세권전쟁에 맞추어 글로벌 밸류체인을 재구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글로벌최저한세의 경우 우리나라 최저 법인세율은 17%(과세 표준 1,000억원 초과 기업의 최저한세율)이고, 명목세율은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시 25%(지방소득세 포함 27.5%)로서 매우 높은 편이다. 각국은 최대한 글로벌최저한세율에 근접하게 법인세율을 운영하여 글로벌IT기업을 유치하려고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외국투자기업에 대한 감면제도가 폐지되어서 외투기업의 실효세율이 최고세율인 25%(지방소득세포한 27.5%)을 적용받게 되어 이러한 메리트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으로, 2020년 G20 정상선언문을 통하여 BEPS의 대응방안 등과 관련한 Pillar 1 및 Pillar 2의 보고서 공개를 승인한 국가임을 감안할 때, 디지털세 관련 OECD의 논의가 금년중 종결되면 결국 그 결과를 수용할 것으로 예상되며, 다자조약체결 및 비준, 국내법 개정 등 규범화 작업에 최소 2-3년이 걸릴 것이므로 실제 과세까지는 상당기간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우리도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입안으로 떨어진 감을 좋아라고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구글과 아마존의 대변인들도 공식적으로 이번 G7 장관회의 합의를 지지하고 나섰지만 이들은 또다시 회피대책을 마련할 게 분명하다. 이미 구글은 앱 장터 콘텐츠 수수료율을 올리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세의 핵심은 투명한 과세 자료이고 이걸 분석할 줄 아는 실력이다. 과세 당국에 주어진 과제다.
우리 기업들만 G7 장관 합의의 무풍지대에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률이 높은 수출기업들은 제조업체라 하더라도 현지 매출 과세의 영향권에 들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