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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 혹은 무능

윤정규 2012. 4. 26. 15:09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답변은 블랙코미디다. 65세인 그는 “전쟁이 나면 군입대하겠다”고 했다.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질문한 방청객은 이렇게 비꼬았다. “안 대표가 연평도에 헬기 타고 군복 입고 갔는데 (군미필자라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들이 많다.” 집권여당 대표가 놀림감이 된 현실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젊은 시절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원죄 때문이다. 홍준표 최고위원의 주장은 설상가상이다. 그는 “네티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군대 안 간 안보라인 참모들을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도발 직후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엔 대통령과 국무총리, 외교통상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이 참석했다.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한 사람은 없다. 준전시 상태다. 군면제자들이 죽 둘러앉아 전쟁 대책을 만드는 모습에 네티즌들이 시끌벅적하게 빈정거리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한국은 병역이 헌법상 의무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2001년 9월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은 54%였다. 9·11테러가 발생하자 87%로 급등했다. 총사령관에 대한 신뢰의 표시인 고공 지지율은 2년이나 계속됐다. 1979년 이란 인질 사건 초기에는 지미 카터 대통령 지지율도 올랐다. 학계는 이를 ‘랠리효과’라고 부른다. 국가위기 상태가 되면 국민들이 대통령의 뒤에 줄을 선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국가안보 이슈가 터지면 여당에 유리하다. 휴전선 포격, KAL기 추락 등으로 여당은 반사이익을 챙겨 다수당이 되고 대선에서 이겼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거꾸로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44%로 떨어졌다.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직후 60%까지 올라 표정관리를 하던 때와 너무 차이가 난다. 이유가 뭔가.


천안함 사건 때 청와대 초기 대응은 혼란스러웠다. 북한 연계 가능성을 그토록 차단한 것은 신중함을 넘어 우유부단으로 비쳤다. 그때 총사령관은 전쟁기념관을 찾아 “추가 도발시 강력 응징하겠다”고 맹세했다. 서약문은 잉크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건만 공수표가 됐다. 북한군이 대낮에 그것도 민간인 거주지역을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강력한 응징은 없었다.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공격하는 그 시간, 해병대 병사 두 명이 산화한 그 순간, 연평도 주민들이 나라 잃은 베트남의 보트피플처럼 섬을 탈출하는 그 긴박한 상황에 대통령과 참모들은 헌법적 책무를 다하고 있었나. 청와대가 공격당한 것도 아닌데 지하벙커엔 왜 갔을까. 그것까지는 좋다. 메시지 혼선은 또 뭔가. 확전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고 지시했다는 대변인의 말을 홍보수석이 뒤집었다. 확전 논의가 있었는지 대통령이 그 말을 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지금 무의미하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중차대한 위기의 순간에 소심했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한번도 아니고 천안함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이 대통령에게 랠리효과가 일어나지 않는 요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명박정부가 안보에서 무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정부를 신뢰하기란 어렵다. 천안함 사건 때 ‘정부가 잘하고 있다’에 동그라미 친 사람이 41%였다. 부정적인 답변(47%)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4월24일, 한국리서치 조사) 그러나 이번엔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24%이고 ‘잘 못하고 있다’는 무려 세 배나 되는 72%나 된다. (11월 27일, 한국리서치) 민심이 떠나고 있다.


등지는 민심을 부여잡지 못하면 국토를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 만기친람?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하는 시대가 아니다. 안보는 시스템으로 운용돼야 한다. 대응 매뉴얼은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둔 전투 시나리오다. 청와대가 나서 이것저것 개입하면 교전수칙을 다시 만든들 북의 추가도발엔 또 종잇조각에 불과해질 것이다. 군 지휘관이 안보에서는 전문가다. 믿고 맡겨야 한다. 대통령은 결과에 최종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지도자는 존경을 받든가 무서움의 대상이 되든가 해야 된다. 근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조롱거리가 돼서야 야수 같은 김정일 집단을 이기지 못한다. 사건의 고비가 지나면 군대 안 간 참모들을 정리하라. 단호함은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말의 성찬은 더 이상 감동이 없다. 구두끈을 졸라매고 행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