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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버리기

윤정규 2012. 4. 26. 15:40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기를 잡기 위한 몸부림이다. 집권 한나라당과 제1야당 민주당의 공천 개혁 추진력이 속도감을 내고 있다.
이른바 기득권 버리기 시도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판에서 공천권은 곧 권력이다. 그동안 공천개혁 논의가 없었던 게 아니나 말의 성찬에 그쳤던 것은 결국 기득세력들이 공천권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틀을 깨지 못하면 개혁은 또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번에는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다르다.
국민 여론을 최대한 담기 위한 ‘그릇 만들기’에 열심이다. 적자생존의 절박감이 묻어난다.

정치권의 기득권버리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
사지(死地)출마’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당선이 상대적으로 쉬운 텃밭을 버리겠다는 결기가 거세다. 민주당 인사들이 선수를 쳤다. 3선 중진 김효석 의원이 지역구(전남 담양·곡성·구례)를 떠나 내년 총선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다.

상대 ‘텃밭’서 총선 출마 선언한 정치인들

텃밭을 내놓고 상대 정당의 텃밭에 나서는 ‘험지 출마론’이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서울 광진갑에서 재선을 했던 김영춘 최고위원이 부산 진구갑 출마 의사를 밝혔다. 손학규 대표의 최측근으로 수도권 3선인 김부겸(경기
군포) 의원도 “당에서 요청한다면 고향인 대구에서 출마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또 전북 전주에서 4선을 했던 장영달 전 의원이 최근 경남 의령·함안·합천 출마를 선언했고,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김정길 전 의원은 과거 자신의 지역구였던 부산 영도구에 출마해 국회의장을 지낸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과 맞대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물론 각자 처한 정치 환경을 감안할 때 일률적으로 높은 가치 평가를 할 수 없을 터이다. ‘버리고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셈법도 깔려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텃밭을 떠나서 총선에서 당선된다면 장차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작은 이익이 아닌 큰 뜻을 좆았다는 타이틀도 붙을 수 있다. ‘살신성인의 정치인!’

그래도, 평가에 인색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 일고 있는 호남 물갈이론, 수도권·영남권 차출론과 맞물려 큰 흐름을 타면 얘기가 달라진다. 젊고 참신한 인재의 수혈을 통해 공천 개혁이 가능해지고, 야권 통합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한나라당에도 물갈이
력으로 작용해 정치판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7.4 당 대표 경선 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최고위원(서울 양천 갑)은 총선 승리를 위한 ‘자기 희생론’을 펼치기도 했다.

‘좁쌀정치’ 벗고 국익 위한 대의를 좆아야

그렇다.
국가적 지도자로 부각되기 위해서는 지역구도 정치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힘들고 먼길이라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의지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기존 정치 질서가 점차 와해되고 새 질서가 나올 것이다. 오자병법(吳子兵法)에서 유래했다는 ‘사즉생 생즉사’, 곧 죽을 각오를 하면 살 것이고 살 각오를 하면 죽을 것이라는 자세로 말이다.

사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이런 기대가 모두 부질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다는 경험이다. 입으로는 국익·국민을 외치면서 ‘좁쌀정치’ 외곬 관성을 못 버렸던 것이다. 누구보다 권력을 향유한 집단과 중진의원부터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국민들이 진정성을 믿어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두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상황이 달라질 텐데 정치가 어쩌면 이렇게도 나라 발전의 거림돌이냐고 장탄식을 절로 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적잖은 정치인들은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백범 정신을 제대로 행동에 옮기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백범은 나이 스무 살 때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벼랑에서 아등바등하지 않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하는 기개를 실천했다.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내 육신의 생명을 앗아갈지언정, 나의 정성은 불가탈이다”고 외치며 견뎌 냈다. 백범 같은 정치인들의 언행일치가 그립다. 그래도, 버리고 떠나겠다는 마음의 순수는 일단 높이 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