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키크롬로프에서
대통령과 소장파 지피지기해야
이재오 특임장관과 이상득 의원은 현정권의 실세다. 두 정치인의 사람들이 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공공기관까지 뻗어 있다. 최근에는 기업의 고문과 비상임이사 자리까지 싹쓸이한다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대통령이 인정하거나 묵인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두 실세와 이명박 대통령은 한몸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제까지는 그랬다.
권력이동기에 예의니 체면이니 하고 말하면 사치스럽다. 생존의 문제이기에 인간관계를 내팽개치고 광적으로 권력을 향해 달리는 군상도 납득이 된다. 그럼에도 유감은 남는다. 이재오와 이상득의 관계는 마키아벨리가 오면 이해할지 모르겠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임기말에도 권력투쟁은 있었다. 권력이동도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측근과 핏줄이 이렇게 피 터지게 싸운 전례는 찾기 어렵다. 결정판은 6일 치러진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이었다. 두 사람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공개 결별했다. 대통령과 두 사람 사이의 삼각동맹 같은 삼각 구도도 이로써 파국을 맞았다.
권력에 취하게 되면 진면목을 보기 어렵게 된다. 아부꾼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재오파는 원내대표 1차 투표에서 완승할 것으로 경선 당일 점심 때까지 착각하고 있었다.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2차 투표에서 이상득파가 자신을 등지지 않을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패인이었다. 2차 투표에서 이상득파 표는 이재오 진영으로 거의 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배신자라며 삿대질하고 있다. 배는 가라앉는데 참으로 공허한 입씨름이 아닐 수 없다.
4·27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 내 권력투쟁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소장파는 대통령을 한편으로 무시하고 때로는 비난하고 있다. 감세론 등 정책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을 지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황우여 원내대표 등장 이후 대통령 지지 세력은 소수파가 됐다. 주도권을 잡은 소장파는 어제 의총에서 신주류의 파워를 과시했다. 완장을 찬 새 권력집단이 태동한 것이다.
신주류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필패한다는 것은 허언이 아니다. 최근 나온 정치적 지표가 입증한다. 한나라당 지지도는 민주당에 뒤지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엔 34.5% 대 31.1%였다. 뒤쪽이 한나라당이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중반에서 20% 중반으로 낙폭이 커졌다. 당 지지율과 현 대통령 지지도가 추락하는 것은 위험신호다. 정권교체의 경고등인 것이다.
대권 방정식이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들이 경험칙을 바탕으로 만든 대통령 선거 결과 예측 방식이다. 경제성장 지표와 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주요 변수다. 대권은 선거 전 12개월간 국내총생산(GNP)의 변화와 선거일 전 4개월간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1960년에서 1996년 대선까지 미국에서 예측 방식을 대입했더니 평균 에러율이 2%도 안됐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도 적용된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똑 떨어진다. 둘 다 경제 실패와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으로 정권교체를 불렀다.
이 대통령의 인기는 추락하고 경제는 꼬이고 있다. 대기업의 이익은 수조원이고 재벌가 사람들은 배당금만 수천억원씩 받는 호황이다. 하지만 물가고로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의 살림살이는 날로 나빠지고 있다. 대권 방정식에 대입하면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은 아주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한나라당의 권력이동 과정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 처절하게 싸우되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상황 파악은 제대로 해야 한다. 새 리더십 확립 과정이 권력투쟁으로 전락하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도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재오와 이상득의 힘을 빌리는 삼각 구조의 청산은 피할 수가 없게 됐다. 한나라당 새 리더십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경제전문가로서 매진하는 길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적도 모르고 나 자신도 모르면 모든 싸움이 위태롭다.”(不知彼 不知己 每戰必殆) 손무가 손자병법에서 말했다. 2500년 전 손무의 지적대로 소장파나 친박파, 이 대통령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