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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은 깨끗해야 한다.

윤정규 2012. 4. 26. 15:48

 

이태리의 베네치아

1980년 ‘서울의 봄’이 끝날 무렵,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그림 같은 목장을 잃었다.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혀 여의도 4배나 되는 충남 서산목장을 내놔야 했던 것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을 누렸던 그도 신군부 사정의 칼날은 피해가지 못했다. 그때 JP처럼 재산을 몰수당한 사람은 300명이 넘었다.


서슬 퍼런 신군부 정권도 부패의 검은 유혹엔 무릎을 꿇었다. 줄기차게 외치던 ‘정의사회 구현’은 빈 수레가 되고 말았다. 썩은 냄새가 진동했고, 종국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마저 수인의 신세로 추락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연이은 측근 비리로 국민 앞에 고개를 떨궜다. 그는 취임사에서 유독 4번이나 부정부패 척결을 소리쳤던 대통령이었다.


사상 처음 여야로 정권이 바뀌었어도 부패의 단절은 없었다. 더 강한 생명력으로 권력의 심장부를 파고들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아들 셋이 법의 심판대에 서는 모습을 눈물로 지켜봐야 했다. 그중 두 아들은 아버지가 청와대에 있을 때 쇠고랑을 찼다. ‘반칙 없는 사회’를 애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들이 저지른 수많은 ‘반칙’에 장탄식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헤겔의 명언은 한국의 부패 역사에서 한 치 오차도 없다. 검은 독버섯은 지금도 자란다. 권력자에서 운동선수에 이르기까지 서식지가 넓어졌다. 사회 저변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번지는 추세다. 온갖 다짐과 처벌에도 부패가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연유는 도대체 뭘까. 바로 부패의 싹이 트기 쉬운 끈끈한 환경 탓이다. 홍익대 박광량 교수는 명쾌한 논거를 제시한다.


그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부터 잘못됐다고 꼬집는다. 그의 설명을 잠시 따라가 보자. 사람 사는 세상에선 원래 윗물이 흐리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미국 하버드대와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따려는 유학생 둘이 있다고 치자. 마침 한국의 은사가 미국을 찾아왔다. 하버드대를 다니는 학생은 공부에 열중하느라 마중 나갈 시간이 없다. 반면 세상살이에 밝은 주립대 유학생은 공항에 나와 가방을 들어주고, 융숭한 식사까지 대접한다. 몇 년 후 학위를 마친 두 사람이 귀국해 그 대학교수의 학과에 나란히 교수 채용 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마지막 승자는 주립대 박사학위 소지자였다. 머리 똑똑한 사람은 주위에 많지만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결국 충성심이 강한 ‘자기 사람’을 뽑게 된다는 얘기다. 희소성의 경제법칙으로 따져 봐도 후자 쪽에 훨씬 높은 값어치가 매겨진다. 정실인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의 논리를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얼마 전 MB(이명박 대통령)는 “나라 전체가 온통 비리투성이 같다”고 공직자들을 질타했다. 말은 옳다. 그렇다면 악취의 근원은 과연 어디일까. MB는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집권 초부터 시작된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 아니던가. 청렴 관념조차 희박한 이들로 내각을 채워 윗물부터 잔뜩 흐려놓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래로 구정물을 내려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MB 자신이었다. 그런 혼탁한 환경이야말로 부패의 독버섯이 자라기 좋은 최적지다. 정실인사가 판치면 부정부패에 대한 상호 견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끈끈한 정실의 고리, 부패의 사슬부터 끊어야 한다.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조선 성종은 어느 날 외삼촌이 승지 벼슬에 있을 때 수입목재인 자단향으로 정자를 지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몰래 내시를 보내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병을 핑계로 거처를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옮겼다. 이궁까지 한 것은 동기간에 죄를 용서해주라는 대비의 청을 뿌리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지엄한 왕명이 떨어졌다. “당장 목을 쳐라!” 성종의 결기에 권력형 비리는 자취를 감췄다.


흐린 물을 원치 않는다면 구정물이 나오는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 나라가 썩었다고 개탄만 할 일이 아니다. 최고권력자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구멍은 가까운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