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든 집의 형태나 모양을 보면 그 고장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물론 품성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기거하는 에스키모의 이글루, 몽골의 게르와 각자 방 하나씩 차지하고 사는 현대인들의 아파트 문화가 같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 한옥은 기와집과 초가가 있다. 초가와 기와집은 지붕 재료뿐 아니라 집의 얼굴인 대문 구조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기와집의 대문 재료는 대부분 나무판자다. 개·고양이는 물론 쥐조차 드나들지 못하도록 촘촘히 짜 안과 밖을 완전 차단한다. 그러면서도 주인장은 가마나 말을 타고 드나들 수 있게 솟을대문을 세우기도 한다. 권위와 불통의 상징이다.
양반집 대문의 정 가운데는 빗장이 가로지른다. 어른 팔뚝만 한 빗장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둔테를 통과하면 집은 고립되고 차단된다. 지킬 것이 많은 집은 둔테 위에 구멍을 뚫어 한 번 더 걸어잠근다. 이중삼중 안전장치다.
반면 서민들이 사는 초가의 문은 어떠한가. 거의가 나뭇가지나 대, 갈대, 수수깡, 싸리 등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사립문이다. 안에선 밖이, 밖에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하지만 사립문엔 우리나라 백성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드나듦의 자유, 즉 마음과 행동의 여유다. 고래등 같이 덩실한 기와집에선 꿈도 꿀 수 없는 구조다.
사립문조차 사치인 서민들이 사는 곳엔 ‘정낭’이 집 안팎을 구분해준다. 구멍이 세 개 뚫린 돌을 양 옆에 세우고 긴 나무를 끼우는 형태다. 원래는 제주도에서 조랑말·소·돼지 등을 방목하여 기르던 시절에 가축들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고안되었으나 표찰 기능도 한다.
맨 아래 하나만 끼워져 있을 때는 마을 안 마실을, 두 개는 이웃마을 출타를, 모두 끼워져 있을 때는 먼 거리로 출장 중임을 의미한다. 물론 세 개 모두 내려져 있을 때는 주인이 집에 있다는 표시다. 따라서 굳이 “이리 오너라” 하고 외치지 않고, 헛기침만으로도 안팎이 소통되는 것이다.
인심 좋은 가문은 정면에 번듯한 대문이 있더라도 뒤편 사립문은 늘 열어 두었다고 한다. 나그네가 기웃거리다 배라도 채우고 가라는 배려란다. 굳이 도둑질, 강도질할 것 없이 ‘서리’ 정도로 인심을 베푼 것이다. 숨구멍처럼. 우리 조상이 살아온 지혜다. 각박한 세태 탓하기보다 자신만의 사립문을 열어 둬보자.
(설왕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