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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규 칼럼] 환자를 돈으로 보는 의사 후속기사 경향신문 9월25일 10면 전체

윤정규 2017. 10. 15. 20:36

[과잉진료·허위감정 의혹]연세대 세브란스 의사 똑같은 MRI 두고 두 가지 소견

탐사보도팀 | 강진구·박주연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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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법원, 진료의와 논문도 같이 쓴 연대 후배 의사에 감정 맡겼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사를 허위감정 혐의로 고소한 윤모씨가 2015년 말 어깨통증 때문에 찾아간 ㄱ병원에서는 어깨근육이 파열됐다며 ‘근육둘레띠증후군’ 진단(맨 왼쪽)과 함께 수술을 권유했다. 반면 동네병원(가운데)과 이대목동병원은 단순 오십견으로 진단했다.   사진 크게보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사를 허위감정 혐의로 고소한 윤모씨가 2015년 말 어깨통증 때문에 찾아간 ㄱ병원에서는 어깨근육이 파열됐다며 ‘근육둘레띠증후군’ 진단(맨 왼쪽)과 함께 수술을 권유했다. 반면 동네병원(가운데)과 이대목동병원은 단순 오십견으로 진단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똑같은 MRI를 보고 법원에는 ‘어깨근육이 찢어진 게 맞다’고 감정 해놓고 내가 외래환자로 찾아 갔을 때는 ‘MRI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요. 돈벌이를 위해 과잉진료를 남발하는 병원은 그렇다 치고 대학교수까지 허위감정을 하면 환자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요”

전직 언론인 윤모씨(63)는 2015년 12월 심한 어깨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 동네 정형외과를 거쳐 의사가 17명이나 되는 서울 강남의 ㄱ병원을 방문했다. 2003년 개원한 ㄱ병원은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한 스타 병원장의 유명세에 프로축구 K리그 지정병원으로 선정되는 등 서울 강남을 대표하는 척추·관절 병원으로 자리잡았다. 윤씨는 동네 정형외과에선 MRI 판독 결과 ‘오십견’ 진단이 나왔지만 어깨통증이 나아지지 않자 출근하다 지하철 광고판에서 본 ㄱ병원을 찾아간 것이다. 

윤씨는 “ㄱ병원 의사에게 1차 진료 때 촬영한 MRI를 보여줬더니 ‘근육이 찢어졌다’며 수술하면 금방 완쾌된다고 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틀후로 수술날짜가 잡혔고 수술비는 250만원이었다. 17만6000원을 내고 수술전 정밀검사도 받았다. 

윤씨는 “모든 게 속전속결이었다”며 “적지 않은 비용이었지만 계속되는 통증과 병원 진단이라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날짜를 받아 들고 당초 ‘오십견’ 진단을 한 동네 정형외과를 찾아간 윤씨는 고민이 깊어졌다. 

해당 병원 원장이 “아무리 돈이 좋아도 (ㄱ병원이 수술을 하라고 했다니) 같은 의사로서 부끄럽다”며 “대학병원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MRI를 보이고 다시 판정을 받아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진짜 근육이 찢어졌다면 수술비 전액을 내가 부담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윤씨는 고심 끝에 수술 날짜를 뒤로 미루고 이대목동병원을 찾아갔다. X레이를 다시 찍고 1차 진료시 촬영한 MRI를 보인 결과 오십견으로 진단이 나왔다. 대학병원 의사는 ‘근육이 찢어지지 않았냐’는 윤씨의 조심스런 질문에 ‘근육은 건강하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돈벌이에 급급한 ㄱ 병원의 ‘과잉진료’를 확신하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과를 받기 위해 찾아간 ㄱ병원의 병원장은 오히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화를 냈다. 쫓기듯 원무과 직원들에게 끌려나온 윤씨는 지난해 2월 ㄱ병원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윤씨는 소장에서 “피고는 의료기관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았고 자칫 멀쩡한 어깨에 수술을 받았다면 수술비외에도 몇 개월간 재활치료와 이에 부합된 의료비를 착취당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요 병명을 근육파열과는 무관한 오십견으로 진단한 동네정형외과 이대목동병원의 진단서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소송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ㄱ병원은 생소한 전문용어를 나열하며 “우리병원이 ‘근육이 찢어졌다’고 했다는데 정확히는 ‘우측 견관절 회전근개 부분파열 및 심한 활액막염(오십견)’이라고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수술을 해야 완쾌된다’는 설명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ㄱ병원은 다른 주장을 내놨다. 멀쩡한 어깨를 칼로 째는 봉합 수술이 아나라 관절내시경을 이용한 ‘유착박리 및 변연절제술’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과잉진료로 판정될 경우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기 위한 의도로 보일 수 있는 해명이었다.

윤씨는 “나는 근육이 찢어졌다는 설명만 들었고 그 외 의학용어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병원 의사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나열하며 수술하겠느냐고 물어봤다면 내가 동의를 해줬겠느냐”고 했다.

결국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소액사건 집중심리부로 재배당이 됐고 재판을 맡은 심모 판사(63)는 지난해 7월 피고측 요청으로 전문기관에 진료기록감정을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병원들이 번번히 감정서를 반송하면서 감정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법원은 1차로 2016년 9월 2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감정촉탁서를 발송했다. 전자추첨을 통해 선정한 감정의사는 정모 교수(39)였다. 하지만 정 교수는 업무가 과중하다는 이유로 한달만인 11월 29일 감정촉탁서를 반송했다. 12월5일 2차로 순천향대 서울병원, 3차로 12월23일 서울의료원에 감정촉탁서를 보냈지만 모두 2~ 3주만에 되돌아왔다. 병원들의 잇따른 감정 거부로 재판이 수개월 넘게 지연되는 가운데 1차 때 감정촉탁서를 반송했던 정 교수가 무슨 이유에서 갑자기 감정을 해주겠다고 자원을 했다. 

경향신문 취재결과 정 교수는 피고측 병원 담당의사와 같은 대학 정형외과 선·후배였다.

두 사람은 2007년 11월 대한견·주관절 학회지에 <견골 관절와 골절의 수술적 치료>라는 논문의 공저자(총 6명)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8년에도 <견갑와 골절의 수술적 치료>보고문에 공동 연구자로 소개됐다. 

의료소송 전문가인 법무법인 우성 이인재 변호사는 “같은 대학 출신한테도 웬만하면 진료기록 감정을 맡기지 않는데 논문을 같이 쓸 정도의 친분이 있는 의사에 감정을 맡긴건 특이한 경우”라고 말했다.

판사 경력 30년의 한 원로 변호사도 “감정의들이 왠만하면 의사 편을 들기 마련인데 3차례나 감정을 거부했다는 것은 사실상 회전근개파열 진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라며 “정상적인 판사라면 처음에 감정을 거부한 의사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감정을 하겠다고 나와도 감정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감정을 맡은 정 교수(39)는 진료의사와 논문 공저자라는 인연 외에도 ㄱ병원의 고모 병원장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회원수가 100여명 남짓한 세브란스 관절경 학회에서 정 교수는 학술위원, 고 병원장은 운영위원이었다. 고 씨는 연세대 정형외과에서 전공의를 모집하기 위해 제작한 홍보책자에 대표적으로 성공한 선배 개업의사로 소개된 2명 중 1명이었다. 당연히 연세대 정형외과의 현직교수라면 고씨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이 때문에 연세대 정형외과내 서열이 거의 막내급인 정 교수가 ‘총대’를 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 정 교수는 고심을 거듭한 듯 2번째로 감정촉탁서를 받은 지 무려 5개월만인 올 6월 1일 진료기록 감정결과를 보내왔다. 감정서에는 ㄱ병원이 원했던 내용이 다 담겨 있었다.

정 교수는 “당시 외부병원에서 촬영한 MRI 상 활액막(오십견)소견과 함께 회전근개 부분 파열의 소견이 보인다”며 근육이 찢어졌다고 진단한 ㄱ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정 교수는 수술 권유에 대해서도 “우측 견관절 통증이 4개월간 지속돼왔고 주사치료 후에도 통증이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수술적 치료에 대한 제안은 적절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했다. 

법원은 피고 병원에 유리한 감정서가 도착한지 2주만에 1년 넘게 지연시켰던 재판을 재개됐다. 윤씨는 “피고의 대학후배 감정결과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소용 없었다. 변론 종결 후 2주만인 6월 30일 윤씨 청구는 기각됐다. 심 판사가 판결문에 기재한 기각 사유는 단 2줄이었다.

“진료기록 감정결과에 의하면 피고가 진단하고 치료방안을 제시한 것이 적정하다고 인정된다”

이대목동병원 등 다른 병원에서 제출한 진단서를 무시하고 오로지 피고와 특수관계에 있는 감정의가 보내온 감정결과에만 의존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그러나 반전이 나왔다. 판결결과를 승복할 수 없었던 윤씨는 MRI를 들고 감정을 했던 연대 세브란스 병원의 정 교수를 찾아갔다. 창구 접수절차를 거쳐 외래환자로 찾아온 윤 씨에게 정 교수는 MRI를 살펴보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그는 “MRI상으로는 이상이 없고 집에서 찜질 정도만 해도 된다”고 진단을 했다. 

법원에 제출한 감정서에는 ‘MRI상 회전근개 부분파열이 보인다’고 했던 정 교수가 환자로 찾아간 윤씨에게는 ‘MRI 상 이상이 없다’며 정반대 진단을 한 것이다. 정 교수가 개인적인 연줄로 연결된 피고 병원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의사로서 최소한의 윤리를 저버리고 허위감정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하지만 정 교수는 ‘ㄱ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진료기록 감정 촉탁 회신을 하는데 있어 아는 사람 존재여부는 무관하고 의사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사실대로 행동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로 다른 MRI 판정결과중 어느 것이 맞느냐는 경향신문 질의에 “(어깨를 감싸는 4개의 근육인)회전근개 중 극상건에 미세한 부분파열 소견이 있다고 사료된다”며 당초 감정 의견을 고집했다. 하지만 그가 근육파열이 맞다고 판단한 주요근거는 어처구니 없게도 감정촉탁서에 첨부된 ㄱ병원의 MRI 영상판독지였다. 

정 교수는 “MRI판독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정밀 판독한 내용이 가장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한다”며 “감정촉탁서에 첨부된 (ㄱ병원의)MRI판독지에 ‘작은 파열’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ㄱ병원의 진단을 믿기 어려워 감정을 의뢰했는데 감정 의사가 ㄱ병원의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작성한 MRI 판독지에 의존해 감정결과를 회신한 것이다. 정 교수의 이해하기 힘든 답변은 그뿐만 아니었다.

정 교수는 ‘그렇다면 왜 윤씨한테는 MRI상 이상이 없다고 했느냐’는 질문에 “회전근개 부분파열이 있었지만 의미를 갖는 원인진단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정된 외래진료시간에 중요도가 떨어지는 진단은 특이소견에 포함되지 않아 중점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정교수의 감정결과에 전문가들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제대 교수 출신의 김덕원 여주고려병원 정형외과 과장은 “현미경으로 보일 정도의 파열이라면 모를까 MRI상으로는 회전근개 부분파열 진단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설령 근육파열이 보인다고 해도 처음 찾아온 환자에게 보전적 치료를 시도해 보지도 않고 대뜸 수술을 하자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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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250600035&code=940301#csidx01b970781317ac886e13a6cde907d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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