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박13일 일정으로 10월3일 인천공항에서 출발 네델란드 암스텔담 공항을 경유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까지 15시간 비행 끝에 도착했다. 2007년 서유럽, 작년6월에 동유럽을 갈 때 마다 비행기는 너무 지겹고 피곤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네델란드 항공에 몸을 싫고 가는 동안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루하다 싶으면 비행기 뒷쪽에 가서 기지개를 펴고 창밖 아래를 내려다보곤 하는 게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유럽을 갈 때 마다 14~15시간 비행기 타고 가는 게 나에겐 항상 큰 걱정이고 싫었다. 4년전 러시아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비자까지 받아놓고 비행기 타기 싫어 밑에있는 직원을 보낸일이 있었다.
그래도 여행은 각박한 생활에서 벗어나 재 충천을 할 수 있고 일상을 잠시 접어 두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으며 낯선 환경과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한다.
장시간 비행 여행이 고단하고 피로한 과정 역시 피할 수도 없는 줄 알면서도 다시 떠나기를 갈망하는 지도 모르겠다.
시차 적응이 쉽지는 않은가 보다. 어젯밤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새벽 5시 쯤 일어나 7시에 호텔 식당에 내려갔더니 으~악 식사메뉴가 빵, 우유 쏘세지, 과일뿐 밥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휴 여긴 한국이 아니지...
날씨는 한국의 여름같이 30도를 유지하며 햇빛이 강했다. 그렇지만 습기가 없어 땀이 나지 않고 그늘 밑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기분은 “짱” 이었다.
아침식사후 신트라로 향했다.
고운 옷을 차려 입은 숲 속의 공주, 신트라는 정말 말 그대로 동화 속의 그림 같은 곳이다. 리스본에 가게 되면 꼭 들러야 한다는 이곳은 독특한 모양과 예쁜 색으로 지어진 궁전들과 우아한 저택들이 숲이 우거진 산과 골짜기에 잘 어우러져 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특별히 사랑했다는 신트라는 그의 장편 서사시 ‘차일드 해롤드의 편력에 여러 차례 묘사된 ‘영예로운 에덴’이다.
깊고 울창한 신트라의 숲 곳곳에 숨어 있는 성과 궁전, 대저택과 정원을 둘러보노라면 그 옛날 이곳의 주인이었던 이들의 탄식소리며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올 것만 같다. 영광의 날들을 추억하며 잠든 숲 속의 미녀는 언제쯤 깨어날 수 있을까.
이 지역의 독특한 기후는 이국적인 식물들이 마음 놓고 산을 타고 자라도록 허락하고 궁전 주변에 아름답고 풍요로운 공원을 키우고 있었다. 손에 묻어날 것 같은 파스텔 색조들로 칠해진 건물들은 파란 하늘을 더 쨍하게, 그 채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경이롭고 신기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곳이었다.
신트라는 리스본에서 28㎞ 정도 떨어진 인구 2만여명의 도시다. 건축물과 자연환경의 독특한 조화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며 이곳의 공원과 정원은 유럽 조경발달에 크게 공헌했다고 한다. 돌이 깔린 좁은 골목과 언덕길에 중세 마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곳도 다른 이베리아 반도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8세기에 무어인들이 지었다가 1147년 기독교도들의 손에 넘어간 성채의 터가 높은 산 위에서 2개의 하얀 원추형 굴뚝이 초현실적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신트라 국립 왕궁을 내다보고 있다. 이곳에 지어진 마술의 성 같은 궁전과 귀족들의 저택들로 19세기에는 유럽 낭만주의 건축물의 중심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당시의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낭만주의적 요소는 신트라의 가장 아름다운 ‘꽃’인 페나 궁전에서 볼 수 있다. 1838년 페르난도 왕자는 가파른 산 봉우리에 있던 부서진 수도원 자리를 보고 첫눈에 그 장소에 반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수도원과 그 주변을 사들인 젊은 왕자는 그 자리에 왕실의 여름 별궁, 페나 궁전을 세웠다.
수도원을 재건하고 또 고딕, 마누엘, 르네상스, 이슬람 등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증축되어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높은 산의 바위에 서 있는 이 궁전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지성보다는 감성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각양 각색의 초소와 전망대들, 그리고 스페인과 아랍 스타일의 타일 장식이 깔린 불규칙적인 모양의 테라스들이 이 궁전에 독특한 모습을 돋보이게 하는데 옛 양식들을 모방하면서도 상식에서 벗어난 별난 모양이나 기이한 규모는 엉뚱해 보이기까지 한다.
질서와 조화와 균형을 거부하고 개성과 상상력과 창의적인 요소를 추구하던 낭만주의 정신은 볕에 녹아 내리지 않을까 싶은 케이크의 장식 같은, 상상의 세계에나 있을 것 같은 궁전을 지상으로 옮겨 놓았다.
궁전의 실내는 보지 못했지만 왕정이 폐지되고 아멜리아 왕비가 떠났던 1910년의 모습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방마다 값진 가구나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고 72개의 촛불을 밝혔던 샹들리에가 달린 무도회장도 있어 왕실의 위풍당당함을 엿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방들이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하기도 하여 왠지 보통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도 주어 좀 묘한 느낌이 라고한다.
세계 3대 성지의 하나인 파티마를 향해 북으로 가다보면 그냥 지나칠수 없는 곳이 카보 다 로카 빨간 등대하나와 절벽뿐인 평범한 바닷가지만 유럽대륙의 최서단이라는 특이한 존제가치로 인해 연중관광객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카몽이스의 시 구절이 새겨진 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장 달랑 찍고 돌아서면 약간은 허전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듯 아담한 관광 사무소가 발길을 잡는다.
이곳에선 아리따운 포루투칼 아가씨가 5000원짜리 유럽 최서단을 다녀갔다는 기념증서에 유려한 필체로 이름을 적어 건네준다.
리스본에서 자동차 거리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파티마, 천주교 3대 성지의 하나인 이곳은 설사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귀에 익은 이름이다.
1차대전이 한창이던 암흑의 시절 1916년 성모마리아가 3명의 어린이 앞에 나타나 희망을 던져주고 미래를 예시해 줬다. 그 예시의 일부분은 베일에 싸인 채 바티칸 교황청 깊은 곳에 보관돼 잇어 아직도 성스러움과 두려움을 전해주고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모마리아가 모습을 드러낸 곳이 성당이 세워지고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성당은 작지만 성당앞 광장은 바티칸 성당 광장의 2배나 될 정도로 넓다. 성모마리아를 차마 그냥 찾아오기가 죄스러워 수키로 떨어진 먼곳에서 부터 무릎으로 기어오는 신자들로 광장의 한쪽 대리석 길은 유리알 처럼 반질반질하다.
저무는 석양노을 속에 잠기어 가는 파티마 성당을 보노라면 설사 신자가 아니더라도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네델란드 암스델담 공항 면세점에서 모자하나 샀습니다.
성모마리아상이 리스본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있다.
리스본 시가의 '배꼽'에 해당하는 곳으로 리베르다데 대로와 바이샤 지구에 맞닿아 있다. 13세기부터 리스본의 중심지로 공식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행해졌고, 종교재판도 열렸다. 원래이름은 '동 페드루 4세 광장'인데 Rossio로 더 많이 불린다. Baixa지구의 메인 광장으로 18.19세기의 건물이 대부분인 현재의 모습은 뽕발 후작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벨렘의 탑(Torre de Belem)
바다와 강의 경계에 있는 이 석조탑은 고향을 떠나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선원들을 전송하고, 또 다행스럽게 포르투갈의 땅을 다시 밟게 된 남자들을 정답게 맞아준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에 있는 벨렘빵집은 하루에 삼만개가 팔리는 리스본최고의 빵집이다. 빵1개의 평균 가격은 0.95유로로 비싼편이다.
벨렘빵집 내부의 모습
까보 다 로까(Cabo da Roca)
유럽 대륙의 서쪽 땅 끝이라고 하는 까보 다 로까는 리스본 서쪽 약 40km의 대서양 해안에 있는 북위 38도 47분, 서경 9도 30분 그리고 절벽의 높이는 약 140 m이다. 포르투갈의 서사시인 카모잉스(Camoes)는 이곳을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기념탑과 등대가 있으며 내가 손으로 가르킨 곳이 사무실이며 이곳을 방문한 사람에게 기념으로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1세가 선조인 항해왕 엔히크를 기리기 위하여 착공하여 1551년 완공하였다. 석회암으로 된 건물은 1변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며 웅장하고 화려한 노르만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신트라
파티마대성당
우리귀에 아주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파티마 대성당의 그 규모가 참 크고 아름다웠다.
앙상한 나무 십자가에 고개을 떨구고 서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 측은하게 보여 가슴이 찡했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자리오의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순례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파티마대성당 미사중...나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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