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선거' 유권자들 손에 달려 있다
일부 후보들 “우선 당선되고 보자” 불법 난무… 성숙한 주권 의식 필요[세계일보]
지난 20일부터 6.2지방선거의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전국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지방선거는 유권자 1인 8표제로 실시된다. 선출인원만 3991명으로 사상 최대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무관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탈·불법 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제주도지사 후보 공천을 받은 현명관 예비후보는 친동생이 유권자들에게 돈봉투를 돌리다 현장에서 적발돼 후보자격을 박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불법 선거운동이 지역과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고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금품살포와 향응제공, 상대 후보 비방, 허위사실 공표 등 방법도 다양하다.
공무원의 선거개입도 교묘하게 자행되고 있다. 사법당국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단속을 하고 있지만 일부 후보자들은 이를 비웃듯 교묘하게 일탈을 일삼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 돈 선거사범 비율은 역대 선거에서 최고 수준이다.
울산에서는 본격적인 선거전이 치러지기도 전에 당선 무효형이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지방선거 출마자 5명이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것이다.
정천석 한나라당 동구청장 후보와 류재건 한나라당 북구청장 후보, 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용수 중구청장 후보 등과 시의원 후보 등이다. 이들은 기소 당시에는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이들은 지난 2월 모 지역일간지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지방선거 여론조사 비용 명목으로 500만원씩 모두 4000만원 상당의 돈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사법부의 확정 판결이 남아 있지만 대법원에서 1심형이 그대로 확정되면 이들은 당선이 되더라도 무효 처리되고 재선거가 실시된다. 재선거가 실시된다면 혈세낭비, 행정공백 등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경북 울진 등 일부지역에서는 후보자들 간에 명예훼손혐의 등으로 맞고소·고발하는 볼썽사나운 이전투구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상대후보를 흠집내기 위해 ‘아니면 말고 식’의 고소가 기승을 부려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다. 이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철저한 조사를 거쳐 무책임한 행동으로 밝혀질 경우 철저한 법적 책임을 져야할 행동임에 틀림없다.
며칠 전 양승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공명선거 담화문에서 “불법으로 표를 구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엄중 경고했다. 무조건 당선되고 보자는 막무가내식 선거전략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지 오래다. 공명선거는 정부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유권자의 태도에 달렸다. 유권자의 공명선거 실천의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국민들 사이에 희망의 정치를 갈망하는 기대가 높지만 정치개혁은 제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고 이를 엄격히 적용하더라도 유권자가 깨어 있지 못하면 타락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가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후보자가 제시한 비전과 정책공약을 면밀히 따져서 투표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오는 6월2일 선거일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하자.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어찌 정치와 나라가 잘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번 투표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만을 위해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닌 우리 민주주의의 꿈과 희망에 표를 던지는 것임을 명심하자.
윤정규 세계일보 조사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