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일단 군더더기부터 빼야 한다. 여줄가리를 제거해야 원줄기를 볼 수 있는 까닭이다. 그것이 진실에 임하는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의원직 사퇴 선언을 놓고 찬반이 엇갈린다. "부친의 의혹을 자식이 왜 책임져야 하느냐"에서부터 "정치적 쇼일 뿐"이라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본질을 보려면 국민의힘, 정치인, KDI 등 윤희숙을 둘러싼 여줄가리 수식어들을 모두 떼어낼 필요가 있다. 그러자 윤희숙 본인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기 시작했다. “염치(廉恥)와 상식을 주장해온 내 신의를 지키는 길입니다.”
염치, 상식, 신의라는 낱말 중에서 유독 내 귀에 오래 머문 것은 염치였다. 염치는 살필 렴(廉)과 부끄러울 치(恥)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다시 말해 부끄러움을 살핀다는 뜻이다.
한자어 부끄러울 치(恥)를 귀 이(耳)와 마음 심(心)으로 파자해보면 뜻은 더욱 명료해진다. 부끄러움은 마음의 소리를 귀로 느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마음과 귀를 한데 묶은 것은 둘이 서로 연결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양심에 어긋난 짓을 하면 귀가 빨개지는 현상은 아마 그런 연유일 것이다.
귀뿐만 아니라 눈도 양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염치와 같은 말로는 체면(體面), 면목(面目)을 들 수 있다. 체면과 면목에서 얼굴 면(面)은 얼굴(口) 안에 눈(目)을 그려넣어 만든 글자이다. 사람은 눈빛을 보면 그의 마음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대개 부끄러운 짓을 하면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염치와 체면은 양심에서 비롯된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만이 양심을 갖고 있고 그 양심에서 부끄러움이라는 염치가 생기는 것이다. 창조론에서 보자면 신은 그렇게 작동하도록 애초 인간을 설계했다. 그러기에 예전 정치인이나 조직폭력배들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카메라 앞에 고개를 푹 숙였다. 요즘은 정반대이다. 얼굴을 빳빳이 세운 채 거짓으로 둘러대거나 남 탓을 한다. 그것은 창조주의 설계 오류일까, 인간 자신의 오류일까.
창조론을 믿든, 진화론을 믿든 염치는 인간의 결점이 아니라 위대한 장점이다. 부끄러움을 알기에 잘못을 고쳐 더 나은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희숙의 행동에서 인간의 위대한 진화를 본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언론중재법’은 ‘언론 재갈 법’ (0) | 2021.08.29 |
---|---|
의료분쟁 줄이려면 의료사고 통계 만들어야 (0) | 2021.08.29 |
양파같은 사람이되자 (0) | 2021.08.26 |
새 구두와 인간관계 (0) | 2021.08.25 |
폼보다 품 (0) | 2021.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