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군 합덕읍 소재 신리 성지는 조선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교우촌을 기념해 조성됐다. 신리는 간척사업으로 논이 생기면서 새로 생겨난 마을로, 이존창에 의해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1865년 위앵 신부가 신리에 들어왔을 때 400명의 주민 모두가 신자였다. 신자가 아닌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1986년 병인박해 때 위앵 신부는 물론 신자 42명이 순교했다. 단일 마을로는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이로 인해 교우촌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논 한 가운데 1만평 부지에 조성된 신리 성지에는 성인 반열에 오른 손자선의 생가와 다불뤼 주교 동상, 기념 성당, 다불뤼 주교 기념관 등이 있다. 2004년에 복원된 손자선 생가는 다불뤼 주교의 주교관이자 조선교구청으로 사용됐다. 다불뤼 주교는 한국천주교의 은인과 같은 존재다. 초창기 한글 교리서를 저술했으며, 조선교회 상황과 순교사적들을 수집 정리해 파리외방선교회에 보낸 ‘다불뤼 비망기’는 훗날 한국천주교사와 순교사의 기념비적인 토대가 됐다.
노출 콘크리크로 건립된 기념관은 다블뤼 주교의 시성 30주년에 맞춰 개관했다. 건물 옥상인 전망대에 올라가면 멀리 합덕 성당과 여사울 성당이 조망된다. 삽교천을 막기 전에는 신리 성지 앞까지 배가 들어왔으며 “신리는 평야지대이자 어느 지역에도 간섭이 미치지 못하는 월경지여서 병인박해 전까지 선교사들의 피란처가 됐다”고 한다.
위앵 신부나 다불뤼 주교 등 선교사들이 남긴 글을 보면 이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순교를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로 신심이 깊었다. 그들의 열정적인 신앙심은 한국천주교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돼 모질고 잔인한 박해를 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굳건히 복음을 지키며 자신들이 믿는 주님 곁으로 갔을 터이다. 내포 성지를 방문하며 순교자들의 정신이 조금이나마 가슴에 와 닿았다.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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