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베풂

윤정규 2021. 9. 15. 00:15

한 알의 곡식을 심으면 만 알이 되고, 하나의 베풂을 실천하면 만 가지의 홍복으로 돌아온다. 이런 일립만배(一粒萬倍)의 원리를 몸소 실천한 식물이 벼와 밀 같은 곡식이다. 이들의 생존전략은 인간에게 먹거리라는 베풂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그것을 얻기 위해 방해물들을 제거하여 이들이 살 공간을 마련해준다. 또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주고 거름을 뿌린다. 오늘날 이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식물로 자리매김한 것은 베풂의 실천에 따른 과보이다. 만약 타자에게 아무 혜택을 주지 않고 얻으려고만 했다면 벌써 잡초처럼 뽑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어떤 보상을 얻기 위해선 먼저 베풀어야 한다. 꽃은 꽃가루 수정의 보상을 위해 먼저 벌에게 자신의 꿀단지를 내어준다. 만약 대가를 제공하지 않고 벌의 노동력만 착취하려는 얌체 식물이 있다면 멸종의 위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부자로 사는 것은 축복이지만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부자의 나눔을 강조한 말이지만 베풂은 꼭 부자만 해야 하는 게 아니다. 일찍이 부처는 무일푼의 빈자들이 선행을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밝은 얼굴로 남을 대하고 고운 말과 고운 마음을 쓰는 것도 매우 좋은 선행이라는 것이다.

하루는 부처가 탁발을 하러 나가는 제자들에게 “탁발할 때 부잣집이 아니라 가난한 집을 돌아야 하느니라”라고 일렀다. 제자들이 “혹시 잘못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부자들의 집을 돌라는 말씀을 하시려는 것 아닌가요?”라며 반문하자 이렇게 설명했다. “아니다. 나는 분명히 맞게 이야기했다. 다시 한 번 이르노니, 부잣집에 가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라.” 고개를 갸웃하는 제자들을 향해 부처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왔기에 누군가에게 베풀거나 그들을 도운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를 통해 그들이 다른 이에게 베풀고 도움을 주는 기회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탁발의 진정한 의미이니라.”

중국의 숭신 선사의 부모님은 절 아래에서 떡을 팔았다. 숭신은 어릴 적에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매일 절에 찾아가 도오 스님에게 떡 10개를 갖다드렸다. 그때마다 스님은 그 중 한 개를 소년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옜다! 이것은 네 후손의 번창을 위해 내가 주는 선물이다.” 하루는 소년이 용기를 내어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떡을 준 사람은 저인데 어째서 제게 선물하신다고 하십니까?” “너에게서 온 것을 다시 너에게 돌려주는 준 무엇이 이상한가?” 내가 한 행위는 다시 나에게 과보로 돌아온다는 깨우침이었다. 소년은 그 길로 머리를 깎고 도오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자기가 베풂만큼 자신에게 돌아온다. 베풂의 인과응보는 부자든 빈자든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사실 물질적 가난보다 더 가련한 것은 '영적 가난'이다. 남에게 베풀 마음조차 없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가난한 사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