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팔자(八字)

윤정규 2021. 12. 17. 23:14

사람들은 환난에 처하면 운명이나 팔자 타령을 한다. 그것은 운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은 숙명과 다르다. 숙명은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어서 바꿀 수 없지만 운명은 그렇지 않다. 운명(運命)의 ‘운(運)’은 ‘움직이다’, ‘운용하다’라는 뜻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상황보다 태도이다. 이미 일어난 상황은 바꿀 수 없을지라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내가 그 상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떠한 자세를 취하는지에 따라 그것은 고난이 되기도 하고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전이나 성장 배경을 건축 재료에 비유했다. 재료가 같다고 해서 똑같은 집이 탄생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해변에 아름다운 별장을 짓고 어떤 이는 오두막집을 지을 수도 있다. 재료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장자’ 내편 등장하는 지리소(支離疏)는 변변찮은 재료로 우아한 '삶의 별장'을 지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꼽추인 그는 턱이 배꼽 아래에 숨어 있고, 어깨가 이마보다도 높고, 두 넓적다리는 옆구리에 닿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체에 비관하지 않았다. 휘어 있는 등은 바느질이나 빨래를 하기에 안성맞춤으로 여겼다. 나라에서 군인을 징집할 때에는 뽑혀갈 걱정이 없었기에 팔을 휘저으며 거리를 활보했다. 나라에 부역이 있어도 면제 혜택을 누렸고, 병자에게 나눠주는 곡식과 땔감까지 받았다. 장자는 가족 열 사람을 먹여 살리는 지리소의 삶을 소개하면서 온전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지리소와 같은 태도로 고난을 극복한 인물이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열두 살 때부터 방적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방적 공장에서 일하게 된 이상 세계 제일의 실 감기 달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중에 우편배달원이 되었을 때에는 번지와 건물을 모조리 외워 누구보다 그 도시를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 후 전신기사로 진급했고 펜실베이니아 철도 회사에서 일하다 마침내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훗날 어떤 기자가 “맨주먹으로 재벌이 되기 위해선 어떤 자격이 필요하냐”고 묻자 그는 “그 자격이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삶에서 피하지 못할 운명은 없다. 출생 환경이나 유전자도 고정불변이 아니다.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일란성 쌍둥이도 각자의 삶이 다르지 않은가. 마키아벨리는 “운명이 행위의 결과물에 반 이상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명 역시 나머지 절반은 바로 우리 인간에게 맡겨 놓았다”고 강조했다.

 

내 앞에 놓인 운명은 나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주어진 팔자라고 한탄하지 말자. 8자를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 기호 '∞'가 된다. 팔자로 사느냐, 무한대의 삶을 사느냐?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