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이 있다. 여자의 눈물 한 방울이면 남자의 간장이 녹는다. 그런데 눈물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흘리거나 마음이 따르지 않는 눈물이라면 십중팔구 후자일 확률이 높다.
거짓 눈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바로 곡비(哭婢)였다. 곡비는 상갓집에서 곡소리를 내고 품삯을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유족들은 장례를 치르는 사흘 내내 울어야 했다. 당시 곡소리의 크기와 애절함은 상가의 위세를 판단하는 척도였다. 상주의 체면을 위해 곡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고용한 것이다. 돈으로 눈물을 산 격이다.
중국 한나라의 황위를 찬탈해 신(新)을 세운 왕망의 눈물도 진짜와는 거리가 멀었다. 황제가 된 그는 백성들에게 토지까지 나눠주었으나 민생이 무너지는 바람에 백성들의 원성은 갈수록 높아갔다. 마침내 곳곳에서 봉기한 반란군들이 수도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왕망은 울음으로써 하늘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왕망은 문무대신들을 거느리고 아침저녁으로 통곡했다. 구슬프게 잘 우는 사람은 낭관으로 승진시켰다. 울음은 효과가 없었고 그의 나라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은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분이었다. 장군은 1597년 고향 아산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셋째 아들 이면이 왜적의 칼에 죽었다는 전사 통보였다. 슬픔이 복받쳐 올랐지만 부하들 앞에서 차마 울 수 없었다. 장군은 수군 영내에서 소금을 굽던 강막지라는 종의 집으로 갔다. 홀로 온종일 울었다.
장군은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일기에 썼다.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어쩌다 이치가 어긋나게 되었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 구국의 영웅도 울고 싶을 때가 많았을 것이다. 장군은 그럴 때마다 남들이 보지 않는 종의 집에서 혼자 눈물을 쏟았다.
우리 정치인들은 혼자서 우는 법이 없다. 꼭 군중이나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훔친다. 그들의 눈물은 왕망의 눈물일까, 이순신의 눈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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